[미디어펜=김연지 기자]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과정에서 정부 당국이 내놓은 시정조치가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양사 간 기업결합 이후 정부의 시정조치가 오히려 경쟁 약화와 독점 심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규제가 공급 과잉과 시장 왜곡을 초래하며 대체항공사의 생존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분석이다.
28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에 따라 인천~괌 노선을 지난 8월부터 주 14회에서 주 21회로 증편했다. 자회사인 진에어는 지난 7월 주 7회에서 10월 현재 주 21회로 증편했다. 에어서울은 지난 2022년 11월 운항을 중단했다가 지난 26일부터 주 7회 운항을 재개해 내달 중순부터 주 21회 운항에 나선다. 이는 시정조치의 행태적 조치 중 하나인 '공급석 축소 금지' 규정 때문이다. 기준연도인 2019년 공급석의 90%를 유지해야 하는 의무 조항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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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대한항공 항공기./사진=대한항공 제공 | 
                        
                
◆ 공급 과잉에 경쟁사 이탈…결합사 중심 '기형 경쟁구도'
문제는 수요 회복이 더딘 상황에서 공급만 늘어나면서 경쟁 항공사들이 수익성 악화로 노선을 포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에 따르면 인천~괌 노선 여객 수는 2019년 1~8월 77만5000여 명에서 올해 같은 기간 45만1000여 명으로 40% 이상 감소했다. 그러나 대한항공·진에어·에어서울이 시정조치 준수를 위해 증편과 재운항에 나서면서 경쟁사들이 운항을 중단했고, 결국 통합 항공사의 노선 지배력만 높아지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부산~다낭 노선도 마찬가지다. 진에어와 에어부산이 각각 주 7회 운항 중인 가운데 2020년 2월 운항을 중단했던 대한항공이 최근 주 7회 운항을 재개했다. 수요 감소로 제주항공은 지난 26일부터 내년 3월 28일까지 운항을 중단하면서 동계 스케줄 기간 부산~다낭 노선은 통합 항공사만 운항하게 됐다.
일본 노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시정조치에 따라 아시아나항공이 이스타항공에 슬롯을 이관한 인천~삿포로 노선에 자체 슬롯을 확보해 동계에도 주 7회 운항할 예정이다. 제주항공에 슬롯을 이관한 인천~오사카 노선도 아시아나항공이 자체 확보한 슬롯을 활용해 이전과 같은 하루 3회(주 21회) 일정을 유지한다.
티웨이항공이 이달 26일부터 취항한 부산~삿포로·후쿠오카 노선 역시 진에어와 대한항공이 보유하던 슬롯을 양도받아 운항하지만, 대한항공 등의 노선 재진입 가능성이 충분해 공급 과잉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노선 재진입으로 인한 공급 과잉에 대한 규제 필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다. 
유럽 노선의 경우 티웨이항공이 '아시아나항공 대체 항공사'로 선정돼 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노선을 운항하고 있으나,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편 축소 후 대형기(A380)를 투입하면서 티웨이항공이 프랑크푸르트 노선 수익성 악화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동계 기간 감편 계획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LCC 업계는 대체 항공사로 지정된 항공사가 통합 항공사와의 경쟁에서 밀려 수익성 악화로 운항을 포기할 경우 통합 항공사만 운항하는 독점 노선이 늘어나 장기적으로 소비자 편익을 저해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정조치가 경쟁 촉진이 아니라 오히려 통합 항공사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고 있다"며 "노선 재진입에 대한 규제나 수요 변화를 반영한 공급석 조정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시정조치 실효성 한계…시장 맞춤형 제도 개선 필요
LCC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시정조치 제도의 구조적 한계에서 찾고 있다. 공정위가 운임 인상을 막기 위해 부과한 '2019년 공급력의 90% 유지' 조치는 팬데믹 이후 급변한 수요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일률적 기준이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일부 노선에서는 수요가 충분히 회복되지 않았음에도 공급을 강제하면서 좌석 과잉과 수익성 악화를 초래했고, 이로 인해 중소 항공사들이 시장에서 이탈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운임 인상 제한 규정 역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항공운임은 국토교통부가 인가한 최대 상한선이 존재하는데, 실제 평시 판매가의 3배에 달하는 인가 운임은 특별한 사유가 아니면 적용되지 않는다. 항공권 가격의 과도한 인하 역시 문제로 꼽힌다. 일부 적자를 끌어안을 체력이 되는 대형 항공사가 이를 감수하고 운임을 대폭 인하할 경우 버티기 어려워진 LCC가 철수하게 되고 결국 대형항공사(FSC)의 독점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대체 항공사가 통합 항공사와 실질적 경쟁력을 갖추려면 제도적·시장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LCC 업계 관계자는 "과거 화물전용항공사 에어제타(구 에어인천) 사례처럼, 단순히 여객기나 인력만 이관하는 방식으로는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며 "화물은 화주 네트워크, 여객은 슬롯·운수권 확보 등 실질적 인프라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중국 노선처럼 운수권과 슬롯이 분리돼 있는 구조에서는 신규 항공사가 운수권을 받아도 실제 운항이 불가능한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에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현 제도가 '소비자 편익 보호'라는 명분 아래 단기적 운임 억제에만 초점을 맞춘 결과, 장기적 경쟁구조 회복에는 실패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공정위가 향후 기업결합 심사 및 시정조치 제도를 개편할 때는 단순한 가격 규제에서 벗어나 경쟁 환경 복원과 신규 진입 유도 중심의 구조적 접근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항공 전문가는 "소비자 편익은 단순히 '가격 안정'이 아니라 경쟁을 통한 선택권 확대로 달성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제도의 목적이 가격 통제가 아니라 시장의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에 있다는 점에서 향후 제도 개선의 초점도 소비자 이익과 경쟁 기반을 동시에 강화하는 방향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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