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중국 철강업계가 본격적으로 감산에 나서면서 국내 철강업계에 숨통이 트일 것으로 전망된다. 수년간 이어진 중국의 저가 철강재 공세로 국내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 및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온 가운데, 이번 감산이 수급 균형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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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가운데)이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를 진행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제공 |
2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 공업정보화부는 지난 24일 ‘철강산업 생산능력 교체 이행방안(초안)’을 공개했다. 이는 하루 전 열린 중국 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제15차 5개년 계획 건의안이 발표된 데 따른 후속 조치로 풀이된다.
새 방안에 따라 중국 내 철강업체들은 앞으로 기존 설비를 교체할 때 생산능력을 최소 3분의 1 이상 감축해야 한다. 또한 2027년부터는 철강기업 간의 생산능력 거래가 전면 금지된다. 그동안 중국 제철소들은 정부가 할당한 생산량보다 덜 생산한 경우 남은 잉여 쿼터를 타 기업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연하게 대응해왔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이러한 거래가 막히면서 잉여분의 생산량을 타사에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실제 세계철강협회(WSA)가 발표한 월간 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정책의 압박으로 지난달 중국의 조강(쇳물) 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4.6% 감소한 7350만 톤을 기록했다. 1~9월 누적 생산량은 7억5000만 톤으로 2.9% 줄었다.
다만 이러한 중국의 감산은 한국 철강사들에 ‘반사이익’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그간 중국산 저가 열연·냉연 제품은 국내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잠식하며 가격 인하를 초래했다. 그러나 공급 축소로 인해 글로벌 시황이 점차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보여,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업체들의 마진 개선과 수출 단가 회복이 가능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일각에서는 중국의 감산 기조가 단순한 ‘물량 조절’이 아닌 ‘고부가가치 중심 전환’이기에 경계해야 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중국은 앞서 2020년 시진핑 주석이 '2030년 이전 탄소배출정점, 206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선언한 뒤 산업구조 고도화 및 친환경 전환을 정책 기조로 제시해 왔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술력 측면에서는 여전히 한국 철강사들이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미국 싱크탱크 글로벌 에너지 모니터에 따르면 중국 철강 산업은 수요 둔화, 낮은 재활용률, 과잉 생산 등으로 청정 전기로(EAF) 전환 속도가 느려 탈탄소화가 지연되고 있으며 지난해 기준 EAF 비중은 약 10%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 철강사의 경우 공격적인 전기로 확대 정책을 펼치는 중이다. 포스코는 광양제철소에 연산 약 250만 톤 규모의 전기로를 신설하고 스크랩 투입 비율을 2021년 15%에서 현재 25% 수준으로 높이는 계획을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연간 약 350만 톤의 이산화탄소 감축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연산 약 270만 톤 규모의 전기로 일관 제철소를 건설해 자동차강판 특화 생산과 저탄소 생산 체계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동국제강 또한 인천 제철소에 Eco‑Arc 전기로를 도입하고 전기로 효율 개선을 위한 ‘하이퍼 전기로’ 기술 개발을 진행하는 등 국내 주요 철강사들은 전기로 기반 친환경 생산 전환을 본격화는 중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K-스틸법(가칭)’의 조속한 제정 필요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철강산업을 전략산업으로 지정하고 연구개발(R&D) 및 설비투자를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정치권의 정쟁으로 논의가 지연되면서 업계에서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해온 중국은 이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친환경 전환 및 고부가 제품 라인 확충을 추진 중”이라며 “국내도 법적 지원체계를 마련하지 않으면 기술격차 우위를 지키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다만 본래 단기적 지원보다 중장기적 투자 지원에 초점을 맞춘 K-스틸법이 통과되면 첨단소재, 수소환원제철, 친환경 공정 등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이번 중국 감산이 단기적으로는 국내 철강사의 실적 개선,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시장 재편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특히 포스코홀딩스와 현대제철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친환경·고부가 제품 비중을 확대하는 기조를 유지한다면 중국의 구조조정 흐름 속에서도 확실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감산 효과에 기댈 순 있지만 결국 지금은 탄소중립·고부가·스마트제조로 이어지는 패러다임 전환을 정책이 뒷받침해야 할 시점”이라며 “철강산업이 국가 전략산업으로서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법·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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