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준모 기자]정부가 석유화학산업에 이어 철강산업에 대해서도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업계 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나온다. 철근 생산시설을 줄이는 방안에 대해서 자율에 맡겼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유인 요소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중소형 업체들에 대한 지원이 충분하지 않고, 업계 내에서 꾸준히 요구해온 전기요금 인하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확실한 인센티브와 실질적인 지원책 마련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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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철근 설비 감축, R&D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사진은 동국제강 인천공장에서 철근이 생산되고 있는 모습./사진=동국제강 제공 |
5일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지난 4일 범용재에 대한 설비를 감축하고, 고부가가치 분야에 R&D를 지원하는 내용 등을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공급 과잉에 직면한 철근의 경우 우선적으로 설비 조정 대상에 선정됐다. 열연·냉연·‧아연도강판 등은 수입재 대응을 우선한 단계적 설비규모 조정을 검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또한 특수탄소강 미래시장 선점을 위해 R&D 로드맵을 수립하고, 2000억 원 규모의 지원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과 생산기반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미 관세협상 후속 지원대책’의 일환으로 4000억 원 규모의 ‘철강 수출공급망 강화 보증상품’과 1500억 원 규모의 ‘철강·알루미늄·구리·파생상품 이차보전사업’ 대출을 제공한다.
이외에도 정부는 불공정 수입에 대한 대응, 저탄소 공정 전환을 위한 지원도 이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자발적인 구조조정은 한계…컨트롤타워 필요
업계는 정부가 철강산업 살리기에 나선 점을 환영하지만, 구체적인 지원책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철근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자율 참여라는 점에서 의구심이 제기된다. 정부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설비 통폐합에 나서라는 입장이지만 업계는 정부가 제시한 인센티브로는 충분한 유인책이 되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이미 철근의 경우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을 포함해 대부분의 공장들이 가동률을 50~60% 수준으로 낮춰놓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구조조정은 결국 설비 통폐합을 고려해야 하는데 기업이 자발적으로 나서기에는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열연강판이나 후판 같은 경우 대부분 포스코와 현대제철에서 생산이 된다. 두 기업이 생산량을 조정하면 되지만, 철근의 경우 10개 이상의 중견 업체들이 난립하고 있어 자율에 맡기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업체들만 감산을 할 수도 없고, 또한 도태한 기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설비 통폐합 역시 자발적으로 나서길 기대하기 어렵다. 시황이 좋아질 경우 설비가 없으면 아예 대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좋을 때를 위해 버티기에 나서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
결국 업계는 정부가 자율에만 맡기지 말고 컨트롤타워를 통해 기업과 협의한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하고, 직접적인 지원금도 함께 연계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산업 구조조정도 기업 자율에 맡기다 보니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는 분위기”라며 “기업들에게 확실한 지원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철강업계 구조조정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전기요금 인하 등 직접적 혜택 없어"
또한 R&D 지원도 대기업에 쏠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부가 전략 품목으로 지정한 특수강 제품들이 대기업이 생산할 수 있는 고기능성 제품이다 보니 실제 혜택이 대기업 중심으로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철강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전기요금 인하와 같은 내용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산업 특성상 전기를 대량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대기업은 물론 중소형 기업들도 전기요금에 대한 부담이 크다. 이에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비용 완화 등을 병행할 필요도 있다는 게 업계 내 중론이다.
산업용 전기료의 경우 해외에 비해 싸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고, 전력 원가가 오른 만큼 가격 조정이 쉽지 않을 수는 있다. 특히 한전 역시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는 등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어서 현실적인 방안이 아니라는 업계 내 관점도 존재한다. 다만 업계에서는 수소환원제철로의 전환 등 다른 노력이 병행될 때 정부의 지원책 마련 등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방안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는 반도체나 자동차, 제약 및 바이오 같은 경우 정부의 노력으로 관세가 줄어드는 등 수출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고 있지만, 철강 산업쪽은 정부의 노력조차 부족했다는 불만이 있다. 철강 제품은 알루미늄 등 일부 비철금속과 함께 미국 수출 시 50%의 관세가 부과된다. 미국 내 수입업체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부담이 크기 때문에 수입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EU에서도 쿼터로 판매량이 묶여 있는데 최근 쿼터를 더 축소하겠다는 움직임까지 나오고 있다. 철강업계에서는 이러한 부문에 있어서도 정부의 노력에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철강업계 한 관계자는 “중소형 기업들은 버티기 어려울 정도로 극한 상황에 몰려 있다”며 “R&D 지원 등이 중소형 업체도 돌아올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간접적인 지원보다는 전기요금 인하와 같은 직접적인 지원이 중소형 업체들에게는 더욱 절실하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준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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