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자동차 운반선 입항 수수료 1년 유예…물류비 부담 완화
관세 소급 시점 '안갯속'…11월 1일 vs MOU 체결일 '줄다리기'
[미디어펜=김연지 기자]미국이 자동차 운반선 입항 수수료를 1년 간 유예하면서 국내 완성차 업계에 숨통이 트였다. 그러나 더 큰 숙제인 자동차 관세 협상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업계는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특히 15% 관세 인하의 소급 적용 시점이 확정되지 않아 수천억 원 규모의 손익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자동차 운반선에 부과하던 입항 수수료를 1년 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지난달 14일부터 부과해 온 입항 수수료는 오는 10일부터 내년 11월 9일까지 1년 동안 유예된다. 

지난달 중순부터 중국산 선박과 PCTC에 부과되기 시작한 입항 수수료는 톤당 46달러 수준이다. 자동차 운반선을 98척 운영 중인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7000CEU급 선박(1만9322톤) 한 척이 미국 항구에 들어갈 때마다 약 12억7000만 원(88만8800달러)을 내야 했다. 연간으로 환산하면 2000억 원에 달하는 부담이었다.

이 비용은 고스란히 완성차 업체로 전가될 상황이었다. 해운업계에서는 예기치 않은 운송비 증가분을 화주에게 청구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현대글로비스도 인상된 운임을 거래처에 이미 통보한 뒤였다. 이번 유예 결정으로 현대차·기아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은 대미 수출 물류비 상승 압박에서 벗어나게 됐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경북 경주박물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환영행사에 참석한 모습./사진=이재명 대통령 SNS

◆ 관세 15% 인하 합의했지만…소급 시점 '변수'

자동차 관세 문제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한미 양국은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소급 적용 시점을 확정짓지 못하면서 완성차 업계는 초조한 기다림을 이어가고 있다. 소급 시점이 언제로 정해지느냐에 따라 업계가 돌려받을 수 있는 관세 환급액이 수천억 원 규모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자동차 관세는 이미 지난 7월 말 타결된 관세 협상에서 현행 25%인 관세요율을 15%로 인하하기로 합의된 내용이다. 하지만 3500억 달러(약 50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 운용방식과 이익배분 등을 둘러싼 후속 협의가 늦어지면서 실제 인하 조치가 미뤄져 왔다. 3분기 동안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계는 각각 1조8210억 원, 1조2340억 원의 관세 부담을 떠안았다.

한미 양국은 관세 협상 타결 내용을 담은 공동 팩트시트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최근 양국 간 안보 현안이 불거지면서 발표 시점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원잠(원자력 잠수함) 이슈'가 관세 협상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 안보 협력과 관련한 민감한 사안들이 정리되지 않으면서, 관세 합의 내용 발표도 함께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9일 한미 정상회담 직후만 해도 팩트시트를 조만간 공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으나, 최근 들어서는 발표 시점을 예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정부가 이번 미국과의 협상에서 경제와 안보를 패키지로 다루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만큼, 안보 협상이 지체될 경우 관세 인하 후속 조치도 함께 늦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안보 현안이 언제 매듭지어질지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세 협상 최종 마무리 시점 역시 불투명해졌다고 우려한다. 

업계 관계자는 "관세 인하 자체도 중요하지만, 소급 적용 시점이 어디까지 인정될 지가 실질적인 손익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기업 입장에서는 하루가 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부 "11월 1일 소급"…미국 수용 여부는 불투명

한미 양국 협상팀은 관세·안보를 아우르는 패키지 협상의 큰 그림을 마무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측에서 법률 문구 검토와 연방관보 게재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최종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지난주를 유력한 발표 시점으로 점쳤던 것과 달리 이번 주에도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았고, 양국 간 추가 조율이 더 필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앞서 한국 정부는 관세 인하 시점을 8월 7일로 소급 적용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 8월 7일은 미국이 동맹국들을 대상으로 상호관세율을 확정하고 발효시킨 날짜로, 한국으로서는 가장 설득력 있는 기준점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최근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과 박정성 통상차관보가 주고받은 메시지에서 박 차관보가 "우리가 제안한 8.7일 대신…"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미국이 난색을 표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이 8월 초 소급을 고집하는 데는 EU 선례가 작용했다. 미국은 EU와 7월 말 관세 협상을 타결한 뒤 9월 24일 연방관보에 이를 게재하면서 8월 1일자로 소급 적용했다. 만약 한국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는다면 완성차 업계는 약 7000억 원 규모의 관세를 환급받을 수 있다. 반면 일본은 9월 4일 협상을 마무리했지만 실제 발효일은 9월 16일이었다. 이는 미국이 연방관보 게재일을 기준으로 삼는다는 원칙을 그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현실적 타협점으로 11월 1일 소급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기자 간담회에서 "자동차 관세 15% 인하 효과를 11월 1일로 소급 적용하기로 했다"고 밝히며 "관련 법안을 신속히 발의해 한미 정부 간 신뢰를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11월 1일 소급은 어디까지나 한국 정부의 희망사항일 뿐 미국이 이를 받아들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미국은 팩트시트 발표 후 양해각서(MOU) 체결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으로서는 특정 국가에만 유리한 소급 조건을 부여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입항수수료 유예로 당장의 물류비 부담은 줄었지만,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연말 결산을 앞두고 불확실성이 빨리 해소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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