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프라인 보유 글로벌 3위…실제 신약 개발 사례는 현저히 적어
규제·자금난 주된 난관…국내 기업 38.2%, "경영권 매각 검토한 적 있어"
[미디어펜=박재훈 기자]국내 신약 승인 건수가 최근 5년 간 크게 감소하면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경쟁이 심화하는 글로벌 시장 속에서 자금난과 복잡한 승인 절차가 국내 신약 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 식품의약품안전처./사진=식약처 제공


1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5년 간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승인한 신약은 총 137건이지만 이 가운데 국내 제조 신약은 25건(18.2%)에 불과해 국산 신약 비중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연도별 승인 건수를 보면 2021년 8건에서 2024년 2건까지 줄었다가 올해 10월 기준 3건으로 소폭 증가했으나 여전히 저조한 수준이다.

제약업계에서는 파이프라인이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파이프라인은 제약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과 가치를 평가하는 지표다. 제약사가 개발 중인 신약 후보 약물의 전체 프로젝트를 의미하며 파이프라인이 많다는 것은 신약 후보 물질이 많다는 의미다. 하지만 파이프라인 개수가 많아도 실제 신약 허가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국가임상시험지원재단(KoNECT)의 2024년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글로벌 신약 개발 경쟁에서 파이프라인 보유 개수로는 세계 3위에 올라있다. 2024년 기준 한국 기업이 보유한 신약 파이프라인은 약 3233개로 미국의 1만1200개, 중국의 6098개 에 이어 전 세계 14.2% 비중을 차지한다.

다만 파이프라인 보유 숫자와 달리 신약 승인 건수는 매우 저조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한국바이오협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기업 74%가 자금난을 호소하고 있으며 이 중 75.7%는 연구개발 일정 차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임상시험 유치와 진행이 어렵고 이는 신약개발 초기부터 중간 단계의 자금 부족 문제로 이어진다. 특히 대답의 38.2%는 자금난으로 인해 경영권 매각을 검토한 적 있다고 답했다.

신약 한 건을 개발하는 것은 글로벌 평균 3조1600억 원(22억3000만 달러)이 소요되지만 임상시험 기간은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국내 신약 허가 기간은 평균 420일로 미국(300일)과 일본(282일) 대비 훨씬 길다. 치료제가 환자들에게 처방되기까지 걸리는 시간 역시 46개월로 해외 주요국 대비 긴 수준이다. 이에 대한 이유로는 복잡한 승인 절차와 보험 등재 과정에서의 추가 지연이 꼽힌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 따라 일부 국내 제약사는 신약 개발 후 해외에서 제조해 수입하는 방식으로 임상시험과 시판 허가를 받고 있다. 국내 제조 신약 비율이 줄고 수입 신약 비중이 81.8%에 달하는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임상시험 승인 건수와 투자 규모가 감소하며 제약바이오 기업의 구조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2024년부터 올해까지 다수 기업이 인력 감축과 경영난을 겪고 있으며 벤처기업의 폐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2025년부터 신약 허가 심사 기간 단축, 심사 인력 확충, 임상시험 승인 절차 간소화 등을 진행하고 있다. 제약바이오 기업에 대한 R&D(연구개발) 세액공제도 확대해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자금 지원과 규제 완화가 현실적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업계의 반응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국산 신약 개발을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바이오벤처에 대한 투자 확대가 시급하며 신속한 허가 심사와 임상 진입 지원 그리고 연구 인력 양성에 대한 체계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와 1조원 매출 신약 배출을 목표로 하는 만큼 자금 및 규제 환경 개선이 빠른 시일 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신약 승인 가능성이 있는 파이프라인 개발에 집중하고 당국의 승인 절차도 간소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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