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택배 노동자 건강권을 위해 새벽배송을 제한하자는 주장에 대해 각계각층에서 반발이 커지고 있다. 소비자 불편과 소상공인 타격, 물류 시스템 재구축 비용, 노동자 선택권 제약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새벽배송이 국민 생활 인프라로 자리 잡은 만큼, 심야 배송 제한보다는 노동여건 개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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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택배기사들이 자신의 1톤 탑차에 배달할 구역의 물건을 싣는 모습./사진=미디어펜 |
11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민주노총 산하 전국택배노동조합(이하 택배노조)은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 1차 회의에서 택배 노동자 과로방지를 위해 초심야(0시~오전 5시) 배송 금지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택배사 속도 경쟁으로 야간 배송이 확산되면서 새벽배송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로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택배노조 측은 “새벽배송을 전면 금지하자는 것이 아니라 가장 위험한 시간대인 초심야 배송을 제한하고, 오전조가 5시부터 출근해 긴급히 새벽배송이 필요한 부분을 배송하자는 방안”이라며 “아침 일찍 받아야 하는 긴급한 품목에 대해서도 품목 사전설정 등을 통해 기존처럼 받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새벽배송 서비스를 운영 중인 주요 기업들은 택배노조의 주장이 실현되기 어렵다고 반박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기존 심야시간에 진행되던 배송 과정을 5시부터 준비할 경우 사실상 출근 전 새벽 시간대 배송이 불가능해지고, 오전 중 배송도 힘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새벽배송 전면 금지가 아니라 일부 제한을 주장하더라도, 현실적으로는 새벽배송 전면 금지나 다름없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이커머스 업계 한 관계자는 “배송 출고 전 목적지별로 택배를 분류하는 과정에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이를 5시부터 시작한다면 이미 새벽배송은 불가능한 것과 다름 없다”면서 “설령 5시에 바로 출발할 수 있다고 해도 일부 지역은 시간을 맞추기 어렵고, 5시에 출발하기 위한 사전 준비는 언제 누가 할지가 다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심야시간 배송 제한이 현실화되면 새벽배송 서비스를 운영 중인 기업은 물류 시스템 전반을 재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막대한 비용이 소모될 뿐 아니라 업체별 물류센터 위치 등에 따라 새벽배송 가능 지역 축소도 불가피하다. 맞벌이 부부나 1인 가구 등 소비자 불편은 물론 소상공인들도 매출 타격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신선식품의 경우 출근 전 배송받지 못하면 퇴근 시간 전까지 선도가 계속 떨어지는 만큼, 새벽배송 수요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 상황이다.
택배 노동자들도 새벽배송 제한에 반대하고 나섰다. 쿠팡 위탁 택배 기사들로 구성된 쿠팡파트너스연합회는 “기사 93%가 새벽 배송 제한에 반대한다”고 성명을 냈다. 쿠팡 정규직 택배 기사들이 속한 쿠팡노조도 “새벽 배송을 없애면 현장 노동자들은 생존권을 위협받는다”며 반발했다. 야간에만 일을 할 수 있거나, 추가 수당이 필요한 노동자들은 새벽배송이 제한되면 고용 불안과 임금 저하에 노출될 것이란 우려다. 이들은 주간에는 교통체증이나 아파트 승강기 사용 문제 등으로 업무 효율이 떨어져 실질 노동시간은 더 길어진다는 점도 비판하고 있다.
새벽배송이 국민 생활 인프라로 자리매김한 만큼, 새벽배송을 사회에 필수적인 심야 노동으로 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도로 보수 공사, 야간 경비, 쓰레기수거, 청소 등 이미 다양한 분야에서 야간에 일하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심야 노동 자체가 문제라고 볼 순 없다는 주장이다. 현장 여건을 반영하지 못한 일괄적인 규제보다는 택배 노동자 휴식권 보장, 노동강도를 고려한 업무구역·할당량 조정 등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벽배송에 따른 심야 노동을 문제 삼는다면 우리 사회에서 새벽에 일하는 많은 업종을 모두 금지해야 하는데 이건 말이 안되는 주장”이라며 “심야 배송을 제한한다면 기업 차원에선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어 새벽배송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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