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와 국민 모두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상생의 길 찾아야 할 때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의약품 가격의 적정성 확보와 건강보험 재정 안정, 그리고 환자 부담의 경감."

위 문장은 약가인하가 갖고 있는 본 취지다. 정부는 약가인하를 통해 보건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감을 줄이면서 몸은 아프더라도 지갑은 아프지 않은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라면과 쌀과 같은 식품과 달리 내려가기만 하는 약가의 특성상 제약사들이 바라보는 셈법은 조금 다르게 움직일 것 같다. 건강보험의 재정 부담 완화를 주요 목표로 시행되는 약가인하는 보다 제약사들과의 상생이 중요하다.

제약사들의 부담이 커지는 구조의 약가인하는 자칫하면 소비자와 기업 모두가 재정적인 고통을 겪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2012년 일괄 약가인하 당시에도 15%의 약가가 인하될 경우 건강보험의 부담이 15% 감소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기업들의 생존법에 따라 다른 결과를 초래했다. 제약사들이 급여 약품 생산 비중을 10% 낮추고 비급여를 10% 늘리면서 건강보험의 부담 감소폭은 24.4%로 확대됐으나 소비자 후생은 되려 큰 폭으로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는 약가인하에 노출된 제약사들이 비급여 전문의약품의 비중을 늘리면서 소비자들의 약제비 부담이 늘어난 탓이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은 개선됐어도 혜택을 받아야 할 국민들의 실질적인 의료비 부담은 커진 셈이다.

하지만 이런 양상에도 제약사만을 욕할 수는 없다. 기업은 본래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다. 보건이라는 부분과 짙게 연결돼 있는 산업군이지만 제약사도 기업이라는 색채를 지울 수는 없다. 당장의 매출 증가세가 둔화되면 숨구멍을 찾기 마련이다. 개인의 입장에서도 비슷한 태세를 취하는데 제약사라고 그렇지 말라는 법이 있냐는 것이다.

무조건 돈을 못 벌게 된다고 해서 정책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장기적인 시선을 갖고 첨예한 상생형 정책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약가인하로 인한 수익성 악화는 제약사들의 R&D(연구개발) 투자 인센티브를 약화시켜왔다. 생산자의 이윤이 감소하게 되면서 제약사들은 비급여 품목 확대나 수입의약품 코프로모션 등 단기적 대응에 집중하게 됐다.

자체 생산 비중이 감소하고 수입의약품 비중이 증가하면서 국내 제약산업의 생산기반은 약화되고 수입 원료의약품 대체 현상은 심화됐다. 현재 국내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3년 기준 25.6%로 선진국 평균인 미국 (60%대) 일본 (50%대)를 크게 못미치는 수준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제약산업 생태계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이런 악순환은 과거 일본의 사례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일본은 1981년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의료비 부담 증가를 이유로 강력한 약가인하 정책을 시행했다. 1982년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에 자리했던 일본의 제약산업은 지속적인 약가인하(2년마다 5%)로 인해 산업의 부가가치가 2018년까지 18.5%에서 5.5%로 70%가량 감소했다. 이는 결국 제약산업의 혁신역량과 투자 의욕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악순환을 초래했다.

일본의 제약사들도 살길을 찾기 위해 대형 M&A를 통해 몸집을 키웠으나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부족과 혁신 역량 저하 문제는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문제로 지적된다.

가장 큰 문제는 산업의 '새싹'이라고 할 수 있는 벤처기업들의 돈줄이 말라버렸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2010년 이후 제약산업 육성을 위해 생명과학 분야 투자를 확대했음에도 기초 연구 투자 부족과 기업-대학 연계 약화로 인해 업계 성장세와 경쟁력은 둔화 양상을 보였다.

글로벌 M&A에 집중한 대형 제약사들이 국내 연구개발 인력과 기반을 축소하면서 일본 내 제약산업의 기술 자산이 약화된 것이다.

현재 한국은 대형 제약사들이 다양한 신약 개발을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벤처기업들의 가능성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벤처기업의 특성상 수익성 확보가 어려운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

일본은 벤처 생태계가 붕괴되면서 대형 제약사의 수익성 악화로 인한 인수가 심화됐고 중소 벤처 기업 설립 유인이 감소했다. 이는 신약 개발 파이프라인 고갈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유발하게 된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한국은 약가인하에서 독자적인 상생형 모델을 구축해야한다고 제언하고 싶다. 일본의 실패는 보건의료 재정 절감만을 목표로 약가를 지나치게 압박했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한국은 약가인하 정책 목표와 제약산업 경쟁력 유지 사이의 균형을 명확히 성정해야 한다.

가령 R&D 투자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확대, 신약 품목에 대한 실거래가 반영, 특허 기간 중 약가인하 제한 등이다.

이런 장치들을 통해 보다 상호 보완적인 협력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보건이라는 색채를 띄고 있으면서 돈을 벌려고만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띄고 있기 때문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불황 속에 긍정적인 업황을 보이는 산업을 찾기 어려운 만큼 성장하고 있는 제약·바이오의 미래와 아픈 사람들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나라를 위해 내부적 돌부리는 최대한 치워줘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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