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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원우 경제부 차장 |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올해 1월 15일 본지 데스크칼럼에서 설령 미국 증시가 못 올라가더라도 한국은 올라가야 한다는 요지의 글을 쓴 적이 있다('2025 주식시장, 미국이 못 가도 한국은 가야 한다'). 다행히도(?) 올 한 해 국내 증시는 미국보다 훨씬 가파르게, 아니 세계 그 어느 나라 증시보다도 더 숨가쁘게 올라왔다. 올해 초 2400선 언저리에 있던 코스피는 이달 초 4226.75까지 올라갔다가 현재는 3850선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표정이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현금 부자들이 잔뜩 늘어났다는 뉴스가 여기저기 나오지만, 정작 올해 주식으로 돈 번 사람들의 비율은 '잘해야 반반' 정도일 거라는 추정도 나온다. 이는 우리 증시의 급상승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몇몇 종목들의 집중적 상승으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손절에 익숙지 않아 원래 들고 있던 이름 없는 소형주를 그대로 붙들고 있었던 투자자라면 아직은, 어쩌면 앞으로도 계좌에 그리 큰 변화가 없을지 모른다.
세간의 시선은 '유동성'이라는 쉽고도 어려운 단어로 점차 수렴된다. 교과서는 주식이 내재가치의 함수인 것처럼 가르치지만 현실 속에선 유동성 장세야말로 가장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변동성을 보여준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올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선 25년 이상의 투자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면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장세가 연중 내내 이어지고 있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도 다들 처음 보는 이 흐름 앞에서 지금의 주식시장에 어느 정도의 거품이 끼어 있는지의 논쟁이 파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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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선 25년 이상의 투자 이력을 갖고 있는 사람 정도가 아니라면 생전 처음 보는 기묘한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사진=김상문 기자 |
모든 논쟁의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전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이자 수년째 지속되는 주식시장의 인공지능(AI) 화두를 최전선에서 이끌고 있는 기업이다. 엔비디아 주가 역시 가파르다는 표현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한 파괴적인 상승세를 수년째 지속 중이다.
최근 몇 주간 전 세계 자본시장이 별안간 방황하는 데에도 엔비디아의 영향이 있었다. 실적이 잘 나왔음에도 누군가는 엔비디아 주식을 팔았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렸다. 거기엔 페이팔·팔란티어 공동 창업자인 피터 틸이나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도 포함됐다. 이들이 엔비디아 주식을 매도했다는 소식은 이미 충분히 오른 것처럼 보이는 이 회사 주가의 추가상승 여력을 한번쯤 되묻게 만들었다.
분명한 것은 엔비디아의 주가 상승을 2000년대 초반의 닷컴 버블이나 네덜란드 튤립 열풍 같은 것과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사실이다. 엔비디아가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어닝 서프라이즈' 뉴스가 이어졌기에 무감해진 면이 있지만, 거의 만화적이라고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이 회사의 실적 성장 앞에 '거품'이라는 단어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엔비디아 하나가 전 세계 모든 자본 시장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나, 근거가 있는 숫자들을 바닥에 깔고 있는 상태라면 부정보단 긍정의 필터가 조금 더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영화 '빅쇼트'로 유명해진 마이클 버리는 얼마 전 자신의 펀드를 청산했다. '부정론자는 명성을 얻지만 돈은 버는 건 언제나 긍정론자'라는 격언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만한 시점이다.
이번 상승이 정말로 '거품'이라면 언젠가는 터질 것이다. 하지만 그 정확한 타이밍은 오로지 시장만이 알고 있다. 일각에서 예측하는 대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유동성을 좀 더 풀어주는 방향으로 향후 정책을 운용하게 된다면, 시장의 노랫소리는 바로 그 거품 속에서 조금 더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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