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새벽, 70년 연기 인생의 대배우 고 이순재 선생 영결식 엄수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선생님이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셔서 '다들 수고했다. 오늘 좋았어' 하시면 좋겠습니다."

칠순을 훌쩍 넘긴, 그토록 아끼던 후배 김영철은 아직도 대선배가 떠난 자리에서 서성이며 그를 놓아주지 못하고 있었다.

"깊이 기억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영원한 팬클럽 회장."

   
▲ 배우 김영철이 27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배우 이순재 영결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자신의 연기의 첫 장을 함께 했던, 그러나 이미 그와 함께 걸어온 연기 인생이 30년에 이르는 배우 하지원은 끝내 그를 보내면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 아침 어느 누구도 지난 70년의 세월을 함께 웃고 함께 울며 함께 걸어온 '거인'의 마지막 가는 길의 한 끝에서 차마 그를 보내지 못하고 가슴을 여미고 있었다.

27일 오전 5시 30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린 국민 배우 고(故) 이순재의 영결식은 그토록 그에게 '구박 받던 못난 사위' 정보석의 사회로 진행됐다.

추도사에 나선 김영철은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다. 눈빛 하나가 후배들에게는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다"며 "정말 많이 그리울 것이다. 선생님 영원히 잊지 않겠다. 잊지 못할 거다"라고 결국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다.

이어 하지원도 추도사를 통해 "선생님은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연기 앞에서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던 진정한 예술가였다"고 말했다. 

   
▲ 이 날 추도사를 한 배우 하지원은 고 이순재 선생에 대해 "영원한 팬클럽 회장"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사진=연합뉴스

120석 규모의 영결식장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비롯해 고인과 오랜 시간 연극 무대를 지켰던 정동환, 그리고 최수종 유동근 박상원 정준호 이원종 정준하 정일우 등 그의 연기 인생에 함께 했던 후배들, 그리고 그가 온갖 열정을 가지고 가르쳤던 학생들이 참석했다.

고인의 나이에 맞춘 91송이의 하얀 국화가 헌화되고, 끝내 그를 보낼 수 없는 마음을 품은 이들의 묵념을 받으며 장지인 경기도 이천의 에덴 낙원으로 향했다.

고 이순재 선생을 떠나 보낸 후 오랜 시간 그와 함께 연기 인생을 보낸 한 참석자는 "이 슬픔은 오래 갈 것이다. 쉽게 잊혀지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은 그 분이 떠나신 것은 받아들여질 것이다. 그래도 그 분은 우리 곁에 영원히 계실테니..."라고 말했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나 서울고와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나온 고 이순재 선생은,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연극 무대에 데뷔한 후 우리나라 최초 텔레비전 방송국인 대한방송의 드라마 '푸른지평선'에서 얼굴을 알렸고, TBC 전속 배우로 시작해 KBS와 MBC 등을 넘나들며 100편이 넘는 드라마에 출연했다.

   
▲ 고 이순재 선생의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이 영결식장을 나서 경기도 이천의 에덴 낙원으로 향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연극과 드라마, 영화를 넘나들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뜨거운 연기 열정을 발산해왔던 그는 배우들이 꺼려하기도 하는 시트컴도 섭렵하며 왕성한 연기욕을 불태웠다. 신구 박근형 백일섭과 함께 나영석 PD의 여행 예능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하면서 국내 여행 예능의 신기원을 만드는 등 그가 걸어온 길은 한국 방송과 영화 연극의 역사가 돼 왔다.

잠시 국회의원의 신분으로 정치권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결국 그는 미련없이 다시 방송과 연극으로 돌아왔고, 지난 해까지만 해도 오랜 친구이자 후배인 신구와 함께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기하는 그야말로 노익장을 과시했다.

그리고 지낸 1월 녹화방송된 2024 kbs 연기대상에서 70년 연기 인생 처음 대상을 수상하며 "시청자 여러분께 평생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는 말을 그를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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