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특별판' 왕가위 감독의 25주년 특별 대담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화양연화 특별판'은 25년 동안 숨겨두었던 미공개 에피소드가 포함된 역사상 가장 긴 버전으로 오직 극장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비밀스럽고 아름다운 시간을 그린 로맨스 영화다. 

왕가위 감독은 이 작품에 대해 “본래 구상했던 의도에 가장 가깝게 완성된 유일한 버전”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이번 특별판은, 단순한 재개봉이 아니라 미공개 에피소드를 공개하는 완전판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절할 수도 있다.

오는 10일 '화양연화 특별판'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 2025년 2월 중국 개봉 당시 '화양연화 특별판' 웨이보 공식 계정에 공개된 왕가위 감독 특별 대담이 전격 공개됐다. 

   
▲ 영화 '화영연화 특별판'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지난 2월 왕가위 감독이 AI와 나눈 대담이 공개됐다. 사진은 '화양영화 특별판의 한 장면./사진=엔케이컨텐츠 제공


이번 대담은 감독 왕가위와 2000년 11월 23일생 여성 관점으로 설정된 AI가 나눈 것이며, 질문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궁금증을 요약해서 만들었다. 대담 속 감독의 설명을 통해 25년 간 감춰져 있던 비밀, 최장 버전을 공개하게 된 이유, 그리고 미완의 결말이 지금 시대에 어떤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었는지 등 작품의 내밀한 비밀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AI와 왕가위 감독의 일문일답

- AI. 25주년 개봉을 앞둔 지금, '화양연화'가 2025년의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가?

- 왕가위. 영화는 시간에게 보내는 편지와도 같다. 다른 시점, 다른 시대에 보면 다른 맛으로 읽히는 법이다. 저 역시 오늘날의 관객들이 이 버전을 보고 어떤 감정을 느낄지 무척 궁금하다.

- AI. 25주년을 맞아 '화양연화'의 가장 긴 버전을 선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 왕가위. 이 특별판은 지금까지 공개된 모든 버전 중에서 가장 긴 버전이다. 우선 관객들에게 본래 제가 생각했던 의도에 가장 가깝게 완성된 버전을 보여드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개인적으로도 오랜만에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재회하게 되어 뜻 깊다.

- AI. 지금 세대들도 '화양연화>에서 공감대를 찾을 수 있을까?

- 왕가위. 이전 버전이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에 머물렀다면, 이번 특별판은 60년대뿐 아니라 2001년의 또 다른 ‘첸 부인’과 ‘차우’를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지금 세대의 관심사에 더 부합한다고 믿는다.

- AI. 만일 ‘첸 부인’과 ‘차우’가 2000년대, 또는 소셜미디어가 넘치는 지금 시대에 살았다면 다른 결말을 맞이했을까?

- 왕가위. 분명히 다를 거다.

- AI. '화양연화'의 결말은 미완의 여운을 남겼다. 이번 특별판은 그 여운을 해소하고 원만하게 마무리된다고 볼 수 있을까?

- 왕가위. 시대가 다르면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도 다르고 결과도 달라진다. '화양연화 특별판'은 분명히 다른 답을 줄 것이다.

- AI. '화양연화'에서 ‘첸 부인’은 독립적이면서도 단정하고 복잡하기까지 한 여성 캐릭터다. 그녀의 모순적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또한 그녀의 의상인 치파오는 그녀에게 있어 속박인가 아니면 보호막인가?

- 왕가위. 사람은 두 번의 인생을 산다고 한다. 한 번은 타인을 위해, 한 번은 자신을 위해. ‘첸 부인’의 행동에 대입해본다면 그녀의 치파오는 체면이자 보호색이라고 할 수 있다. 나에게 '화양연화'는 결코 불륜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비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그토록 보수적인 환경에서 이 남녀가 어떻게 말할 수 없는 비밀을 지켜냈는가였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을 상대방의 배우자로 상상하는 역할극까지 하며 그들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았는가. 결국 ‘차우’는 자신의 답을 찾았고, ‘첸 부인’은 자기 자신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첸 부인’이 가정으로 돌아가고 수년 후에 앙코르와트에서 ‘차우’와 재회하는 것이 본래 결말이었다. 하지만 시사회 직전에 이 장면을 삭제했다. 그녀가 독립적인 여성이 되어서 더 멀리 나아가길 바랐기 때문이다.

- AI. '화양연화'의 배경은 1960년대 홍콩이다. 왜 이 시기를 선택했나?

- 왕가위. 영화의 기획단계부터 되짚어본다면, '화양연화'의 초기 제목은 ‘음식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였다. 지나 온 세기에 세 가지 발명품이 남녀 관계를 완전히 바꿨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초기에 60년대는 한 부분에 불과했다. 그 부분들을 이야기해준다면, 첫 번째는 60년대의 전기밥솥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여성 일부를 부엌에서 해방시켜 사회에 나가게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라면이다. 한 사람, 한 그릇의 면은 독신 생활의 시작일 수도 끝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세 번째는 24시간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의 등장으로 모든 사람이 언제든 안식처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세가지 중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완성한 것은 2000년대 편의점 이야기였다. 현대 배경이라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 다음 60년대를 찍기 시작했다. 결국 2000년대 이야기는 2001년 칸 영화제 마스터클래스에서 단 한 번만 상영하게 되었다. 4년 후, 이 이야기의 배경은 홍콩에서 뉴욕으로 바뀌었고, 배우도 장만옥과 양조위에서 노라 존스와 주드 로로 바뀌었다. 이 버전이 발전되어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2000년대 홍콩 버전은 가장 큰 비밀이 되어 줄곧 우리 필름 보관소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25주년 특별판의 개봉과 이 대담은 일종의 비밀 해제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 AI. '화양연화 특별판'의 예고편에 ‘오직 극장에서만’이라고 명시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 왕가위. 예전엔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한다는 것은 매우 의례적인 일이었다. 극장이 아닌 다른 경로로 영화를 볼 수도 없었으니까. 한편으론 극장에서의 관람을 놓치면 언제 다시 볼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오늘날의 관객들도 이런 의례감을 경험하길 바랬다. 그래서 이 특별판은 극장 상영으로만 제한하고 다른 경로로는 배급하지 않기로 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영화를 극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이다.

- AI. 2000년의 '화양연화'와 비교해서 이번 특별판이 더 높은 품질의 관람 경험을 제공하는가?

- 왕가위. 이번 복원은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화면 뿐 아니라 사운드 부분까지 신경 썼다. 사운드는 호주에서 완성했는데, 최종 믹싱은 나의 오랜 파트너인 오스카 수상자 로버트 맥킨지가 담당했다. 이미 영화를 관람한 관객이든, 처음 보는 관객이든 모두가 똑같은 감동을 느끼시길 바란다.

- AI. 나와 같은 젊은 세대에게 영화와 시간에 관해 한 마디 해줄 수 있는가?

- 왕가위. 이 영화를 통해 여러분만의 화양연화를 찾으시길 바란다.

- AI. 내 질문은 끝났다.

- 왕가위. 사실 궁금한 부분이 있다. 당신은 '화양연화'를 본 적이 있나?

- AI. AI이기 때문에 감정과 감각이 없다. 그래서 영화관에서의 몰입감과 의례감을 진정으로 경험할 수 없다.

- 왕가위. 미래의 언젠가에는 당신도 관객처럼 이 영화를 볼 수 있길 바란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