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털렸는데 ‘수사 중’이라는 말만 반복합니까? 김범석 의장 나오라고 하세요!”
사상 초유의 정보 유출 사태로 국회에 불려 나온 쿠팡이 ‘모르쇠’ 답변으로 일관하다 여야의 거센 역풍을 맞았다. 국회는 ‘김범석 의장 증인 채택’과 ‘청문회 개최’라는 초강수를 뒀고, 대통령까지 나서 “엄중한 책임”을 주문하며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일각에서는 최대 1조 원대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제기되며 쿠팡은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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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가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과 관련 12월 2일 오전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 의원들 질의에 답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2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긴급 현안 질의에 출석한 박대준 쿠팡 대표는 “쿠팡 한국 법인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지만, 여·야 의원들은 사건 경위와 책임 소재에 대한 답변이 미흡하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매출 40조 원이 넘는 공룡 기업에서 사상 초유의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며 허술한 보안 시스템을 질타했고,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도 “모든 국민의 공동 현관, 가족 관계가 다 털린 셈”이라며 “방어 체계 구축을 위해서라도 신속하게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압박했다.
특히 의원들은 쿠팡의 안일한 대응 태도를 문제 삼았다. 쿠팡은 지난 6월부터 5개월간 3370만 개의 계정 정보가 유출됐음에도 고객 항의가 있기 전까지 이를 인지조차 못 했다. 사태 파악 후에도 홈페이지 배너에 작게 사과문을 올렸다가 당일 삭제하고, 정보 ‘유출’을 ‘노출’로 표기하는 등 사태를 축소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여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박대준 쿠팡 대표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생각이 부족했던 것 같다”며 재차 사과했다.
특히 질의 과정에서 박대준 대표가 정보 유출 경위 등을 묻는 말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이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하자 국회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인 최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계속 수사 핑계를 대며 답변을 회피하면 여야 합의로 청문회를 열겠다”며 “박대준 대표는 물론 실질적 오너인 김범석 의장까지 증인으로 채택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여야 의원들은 개인정보보호법상 매출의 3%인 최대 1조 원대의 과징금 부과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가장 큰 과징금을 부과받은 기업은 SK텔레콤으로, 2324만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해 1347억9100만 원을 부과받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가 기본적인 보안 관리 부실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번 정보 유출은 전직 쿠팡 개발자에 의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승주 고려대학교 교수는 이번 사고 원인을 ‘호텔 방 키’에 비유해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호텔에 들어갈 때 주민등록증으로 신원을 확인한 다음 호텔 방 키를 발급받는데, 그 호텔 방 키를 발급하는 비밀번호를 내부 개발자가 갖고 나간 뒤 호텔 방 키를 무한으로 생성해 고객 정보를 빼낸 것”이라며 “직원이 퇴사하면 접근 권한을 즉시 회수·변경해야 하는 기본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서도 박 대표는 정보 유출자의 업무 범위나 정보 접근권한, 국적 등에 대한 질문에 “수사 중인 사안이라 답변하기 곤란하다”는 대답을 되풀이했다. 의원들은 정보 유출자가 개인인지 단체인지, 고객 정보 탈취나 쿠팡 전체 시스템 훼손 등 유출자 목적이 무엇인지, 유출자가 중국 국적자라는 것이 사실인지 등 질의를 거듭했지만, 박 대표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박대준 쿠팡 대표는 정보 유출에 대해 거듭 사과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이나 피해 보상안은 언급하지 않았다.
박 대표는 “현재까지 모니터링한 결과에 따르면 2차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국민들의) 여러 우려에 대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그런(범죄에 악용되는) 피해가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도록 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반복했다. 무너진 보안 시스템을 어떻게 재건할지, 불안에 떠는 3000만 고객을 어떻게 달랠지에 대한 ‘로드맵’은 제시하지 못했다.
한편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쿠팡 때문에 우리 국민들의 걱정이 많다. 사고 원인을 조속하게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개인정보 보호를 소홀하게 여기는 잘못된 관행과 인식 역시 이번 기회에 완전히 바꿔야 한다”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들을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에 나서달라”고 주문해 정부 차원의 고강도 제재를 예고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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