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HD현대중공업이 HD현대미포를 흡수하고 통합법인을 출범했다. 다만 출범과 동시에 제시한 ‘2035년까지 매출 37조 원’ 목표가 현실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단순한 외형 확대 이상의 구조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합병 전 양사의 도크 가동률이 100%에 달한 만큼 생산능력 제약 요인을 감안한 정교한 전략이 요구된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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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위)·HD현대미포(아래) 야드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일 HD현대중공업은 올해 8월 이사회가 승인한 HD현대미포와의 합병과정을 마무리했다. 이번 합병은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 우위 강화, 미래 조선업 성장 기회 포착 극대화라는 명목으로 진행됐다.
이날 HD현대중공업은 양적, 질적 대형화를 통해 2035년까지 매출 37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놨다. 업계가 전망하는 당해 조선 시장 규모(약 316조 원)에 견줬을 때 11% 가량의 점유율을 확보하겠다는 포부다.
다만 실제 생산가능량을 감안하면 복잡한 과제가 남아 있다. 통합 전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지난해 매출액은 각각 14조9000억 원, 4조6000억 원 수준으로 단순 합산 시 약 19조5000억 원에 달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단순 매출 비례 계산만으로도 연 평균 약 7%의 매출성장을 이뤄야 한다. 이는 2035년까지 OMR(Orioin Market Research) 등 글로벌 시장조사 분석기관이 전망하는 연 평균성장률(CAGR) 3.5%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으로, 실제 조선사의 생산능력(capa), 선종별 단가 차이, 글로벌 발주 사이클 등을 고려하면 달성 난도가 훨씬 높아질 수 있다.
HD현대중공업이 해양플랜트, 선박엔진 등 기타 사업을 동시에 영위하는 만큼 37조 원이라는 목표 비중이 분산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긴 하나, 3분기 사업보고서 기준 HD현대중공업의 전체 매출 중 조선사업 비중은 약 70%에 달해 목표 달성에는 조선 산업 비중이 가장 크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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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 정기선 회장이 1일(월) 통합 HD현대중공업 출범을 축하하는 영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도크 가동률 100%, 목표 달성 최대 난제
이 중 가장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부분은 도크 가동률이다. 올해 3분기 기준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의 평균 가동률은 선박 기준 각각 99.9%, 100.15%로 사실상 현 생산능력 수준에서 생산 가능한 척수는 이미 상한선에 근접했다. HD현대중공업의 해양플랜트 부문은 40% 수준의 가동률로 여유가 있지만, 추가 도크 증설 계획이 전무한 상황에서 단순 수주 증가로 매출을 두 자릿수로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매출 확대를 위해서는 고부가가치 선박 비중 확대, 공정 효율 개선 등 구조적 접근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변수는 외부 시장환경이다. 선가가 높은 친환경 선박의 경우 2021~2024년 코로나19와 해운사 선박 부족, IMO 탄소 규제 강화 등으로 급증했으나 최근 발주가 완료되며 올해 들어 증가세가 둔화됐다. 올해 기준 선가는 평균 LPG선(3만8000CBM)은 6900만 달러, 컨테이너선(1800TEU)은 3200만 달러, 벌크선(6만3000DWT)은 3330만 달러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조선사들의 견제도 걸림돌이다. 앞서 중국과 일본은 HD현대중공업과 마찬가지로 조선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규모 합병 작업을 추진해 왔다. 중국 정부는 산업 전반의 효율화를 명분으로 중국선박공업그룹(CSSC)과 중국선박중공업그룹(CSIC)을 하나로 묶는 구조 개편을 진행했고, 일본 역시 이마바리조선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 간 통합을 성사시키며 몸집 키우기에 나섰다. 두 나라 모두 합병을 통해 생산능력을 키우고 한국을 쫓겠다는 의도다.
이중 중국 조선사들의 경우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공격적 저가 수주와 대규모 설비 투자를 진행하며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실제 중국은 가격경쟁력으로 벌크선·탱커 시장을 사실상 장악한 상태로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10월의 경우 중국은 글로벌 선박 건조량의 73%를 점유했다.
향후에도 중국과 유사한 선종으로 경쟁하게 될 경우 HD현대중공업은 단순한 가격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되면서 목표 달성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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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 정기선 회장이 19일(수) 울산 HD현대중공업 영빈관에서 5,000척 인도 기념 식수를 하고 있다./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HD현대중공업… 도크는 유연하게, 전략은 그대로
HD현대중공업은 이러한 업계의 우려에 도크 유연화, 고부가가치 선박 수주 전략 유지 등으로 매출 확대를 꾀하겠다는 입장이다.
먼저 도크 포화 문제에 대해서는 ‘도크 유연화 전략’을 내놨다. 구체적으로 현재 HD현대중공업은 10개, HD현대미포는 4개의 도크를 가동 중인데, 기존 현대미포조선이 특수선을 건조하던 3번, 4번 도크에 함정 건조 설비를 추가할 예정이다.
해당 2개 도크를 그간 보조적 용도로 사용하던 HD현대중공업의 4번, 5번 도크와 병행 활용하면서 고부가 선박의 생산 유연성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조선업은 선종에 따라 척당 매출이 최대 수천억 원씩 차이가 나는 산업이기 때문에 동일한 도크에서 어떤 선종을 건조하느냐에 따라 연간 매출이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해당 전략은 ‘척수 증가가 아닌 단가 증가’에 방점을 찍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그간 이어왔던 고부가 선별 수주 전략은 그대로 유지한다. 조선 부문에서 HD현대가 최근 수익성을 유지해 온 핵심 요인이 LNG운반선·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종이기 때문이다. 비록 올해 신조선가가 지난해 대비 하락하는 등 일부 조정을 받긴 했지만 LNG·대형 컨선의 수익률은 여전히 탱커·벌크선 대비 확연히 높은 상황이다.
실제로 발주가 전년 대비 절반 가까이 감소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지난달 기준 올해 한국은 806만 CGT(183척)를 수주하며 전년 대비 15% 감소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선박 수주량이 52% 급감한 중국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선방한 셈이다.
특히 한국이 수주한 선박 1척당 평균 톤수는 5만8000CGT로 중국(2만2000CGT) 대비 2.6배에 달한다. 이는 부가가치가 큰 초대형 선박 발주가 한국으로 몰렸다는 의미로 수익성 측면에서는 한국이 중국보다 유리한 구조임을 보여준다.
중장기적으로는 IMO 환경 규제 강화 기조가 지속되는 만큼 친환경 추진선의 비중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점도 HD현대중공업의 전략적 선택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로 꼽힌다.
최근 국제해사기구(IMO)의 ‘넷제로 프레임워크’ 채택이 미뤄지긴 했으나 글로벌 선주들의 친환경 선복 전환 수요는 구조적으로 계속 확대될 것이란 전망에서다.
실제 IMO는 이미 2050년 해운 온실가스 배출 ‘순제로(Net Zero)’를 목표로 설정하고 선박 연료의 탄소 집약도 관리, 연료전환 가이드라인 마련 등 감축 전략을 단계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이에 더해 HD현대중공업은 사업보고서에서 “EU ETS(탄소배출권), FuelEU Maritime, 미국의 청정항만 프로그램 등 국가·지역 단위 규제는 작동중”이라며 “친환경 전환이 향후 더욱더 가속화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즉 글로벌 선주들의 친환경 선복 전환 수요가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시장 환경이 마련되면서, HD현대중공업이 추진해온 이중연료(DF) 및 친환경 엔진 중심의 선종 전략은 외생적 규제 흐름과 맞물려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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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가 최근 인도한 필리핀 초계함 2번함 '디에고 실랑(Diego Silang)함./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방산·특수선 확대, 기회 시장 잡는다
여기에 합병 후 회사는 신규 성장축으로 쇄빙선·방산함정 등 특수선 시장을 내세웠다. 특히 쇄빙선의 경우 선체 강화, 내빙(耐氷) 설계, 항만 인프라 대응성 등 기술 장벽이 높아 고부가 시장에서 ‘기술 기반 스프레드(가격 차익)’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적 의도가 보이는 대목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앞서 쇄빙선이 드나드는 북극항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활용도가 크게 떨어졌으나, 최근 미국이 북극항로에 관심을 보이면서 기회의 시장이 열릴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방산 부문에서도 자신감을 드러냈다. 지난 1일 HD현대는 매출 목표는 35조 원 중 10조 원을 방산 부문에서 벌어들이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와 맞물린 방산이 우방국 중심으로 공급망이 짜인 만큼, 중국의 저가 공세는 통하지 않기에 그만큼 한국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판단으로 해석된다.
글로벌 방산 시장 진출의 기폭제가 될 마스가 프로젝트가 그 발판이다. 미 해군은 향후 2054년까지 약 1조 달러 규모의 장기 예산을 계획하고 있으며 2035년까지 일부가 신규 건조 및 유지보수(MRO) 사업에 집행될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최근 공개된 한미 조인트 팩트시트에서는 한국 조선소가 미국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조선소 현대화, MRO, 인력 양성, 공급망 강화 등을 위한 ‘조선소 워킹그룹’을 구성하기로 합의한 사실이 명시된 만큼 향후 수주 사업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결국 HD현대중공업은 ‘2035년 37조 원’ 목표를 위해 단순 점유율 확대 대신 △고부가 선종 중심 포트폴리오 유지 △특수선·쇄빙선 등 기술 장벽 높은 니치마켓 확장 △도크 전환을 통한 생산 유연성 강화에 중축을 둘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통합 법인 출범은 양질적 대형화를 통해 양사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라며 “시장을 확대, 다변화하는 동시에 최첨단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 치열해지는 글로벌 시장에서 절대적인 경쟁 우위를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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