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기차 시장 연간 20만대 돌파…현대차·기아 판매 둔화세
현대차 울산 EV 라인 올해만 10번째 휴업…전기차 보조금 소진 여파
[미디어펜=김연지 기자]국내 전기차 시장이 연간 20만 대 시대에 진입한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의 내수 시장 주도권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양사의 시장 점유율이 50% 초반대로 하락했고, 전기차 전용 생산라인 가동 중단까지 이어지는 등 비상이 걸렸다.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FSD) 감독형 서비스 도입과 중국 전기차 브랜드의 연이은 국내 진출로 내년 국내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 경쟁은 한층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4일 카이즈유 데이터 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11월 국내 전기차 신규 등록 대수는 21만673대로 집계됐다. 이는 포터 일렉트릭 등 전기 상용차를 포함한 수치다. 같은 기간 전기 승용차 신규 등록 대수는 18만8507대로 집계됐다.

   
▲ 아이오닉 9./사진=현대차 제공

브랜드별 점유율도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현대차·기아의 합산 점유율(제네시스 포함)은 지난해 54.8%에서 올해 50.6%로 4.2%포인트 내려앉으며 간신히 절반을 지켜냈다. 테슬라는 5만5626대(29.5%)를 판매하며 기아를 제치고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기아는 5만2176대(27.7%)로 2위, 현대차는 4만205대(21.3%)로 3위를 기록했다. 이어 KGM 8844대(4.7%), BMW 5316대(2.8%), BYD 5006대(2.7%), 아우디 4331대(2.3%), 포르쉐 3116대(1.7%), 제네시스 2949대(1.6%), 폴스타 2884대(1.5%), 폭스바겐 2349대(1.2%), 메르세데스-벤츠 1877대(1.0%) 순이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기아 3만4384대(29.3%), 현대차 2만8463대(24.3%), 테슬라 2만8498대(24.3%)로 국산차 양강 체제가 유지됐지만, 올해는 테슬라의 급성장과 중국 브랜드 확대가 겹치며 판도가 크게 달라졌다. BMW는 5.1%에서 2.8%로, 벤츠는 3.8%에서 1.0%로 감소하며 수입 브랜드 비중도 크게 줄었다. 반면 BYD는 첫해 5006대를 기록하며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다.

◆ 현대차·기아 EV 판매 저조…전기차 라인 휴업도 이어져

지난달 현대차의 국내 전기차 판매는 3266대로 전년 대비 41.2% 감소했다. 아이오닉 6는 244대로 66.8% 급감했고 아이오닉 5도 690대로 44.9% 줄었다. 포터 전기차는 329대로 74.1% 하락했다. 신규 모델 아이오닉 9가 484대를 기록하며 판매가 본격화됐지만 기존 주력 모델 감소 폭을 모두 채우기에는 부족했다.

기아도 비슷한 흐름이다. 지난달 전기차 판매는 3705대로 전년 대비 19.2% 감소했다. EV3는 684대로 70.1% 줄며 가장 큰 낙폭을 보였고, EV6도 392대로 49.1% 감소했다. EV9은 186대로 29.2% 증가했지만 전체 추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신차 EV4·EV5는 출시 초기임에도 전월 대비 각각 48.3%, 42% 줄며 기대치를 밑돌았다.

수요 위축은 보조금 조기 소진, 금리 상승, 중고 전기차 감가 확대, 충전 인프라 정체 등 복합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전동화 흐름이 하이브리드 중심으로 재편되며 순수 전기차 수요를 직접적으로 잠식한 점도 영향을 줬다.

현대차는 오는 12일까지 울산 1공장 2라인 소속 기술직(협정 근로자 제외)을 대상으로 휴업을 시행한다. 올해만 10번째 가동 중단 또는 감산 조치다. 전기차 판매 둔화로 재고 부담이 커지면서 생산량 조정이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 테슬라·중국 브랜드 공세 확산…내년 안방 경쟁 본격화

국내 EV 시장 지각변동의 중심에는 테슬라가 있다. 올해 1~11월 테슬라 점유율은 29.5%로 전년 대비 5.2%포인트 상승하며 현대차·기아를 제치고 시장 1위에 올랐다.

테슬라는 올해 중국산 모델 도입으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한 데 이어 주행 보조 기능인 감독형 FSD 서비스를 국내에 적용하며 한국 시장 공략을 확대하고 있다. 현재 FSD는 미국산 일부 모델에만 적용되지만, 향후 테슬라가 국내 수요 증가에 맞춰 미국산 물량을 늘릴 경우 국내 완성차 시장과 자율주행 기술 경쟁 구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중국 브랜드 공세도 거세다. BYD는 첫해 5006대를 판매하며 2.7% 점유율을 확보했고, 지리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지커는 한국 딜러사 계약을 마치고 내년 1분기 전시장을 열어 2분기부터 판매를 본격화할 예정이다. 샤오펑도 한국 법인 설립을 완료하며 국내 진입을 준비 중이다.

전기차 시장 재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현대차와 기아는 전동화 라인업을 재정비해 내수 점유율 유지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현대차는 내년 1분기 연산 20만 대 규모 울산 신공장 가동을 앞두고 있으며 유럽 전략형 모델 아이오닉 3의 국내 출시 가능성도 거론된다. 기아는 EV2 등 신형 전기차 투입을 계획하고 있다. 제네시스는 GV90, GV60 마그마 등 신규 전기차 출시로 프리미엄 수요에 대응할 전망이다.

업계는 내년 국내 전기차 시장이 가격 전략, 충전 환경, 자율주행 기술, 브랜드 파워 등 복합 요소가 맞물리는 본격적 재편 국면에 들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의 저가·기술 공세가 지속될 경우 현대차·기아의 전동화 전략도 근본적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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