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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김진호 미디어펜 부사장 겸 주필. |
잃었던 성지(聖地) 예루살렘을 회복한다니 가슴이 뛰었다. 종교적 가치가 세속을 압도하고 정신세계마저 지배하는 11세기말 유럽은 십자군 원정으로 끓어올랐다. 국왕과 귀족이 앞장서고 기사들의 자발적 참여가 이어졌다. 십자군이 된다는 것은 신앙적 의무이자 영적 구원에 이르는 길이었다. 다양한 종교에서 현재까지 이어진 성전(聖戰)의 시작이다.
1096년 시작된 1차 십자군 원정부터 3차 원정까지 순수한 종교적 열정은 엄청난 에너지를 공급해 한때 예루살렘 공략에 성공했다. 그러나 영구적 예루살렘 점령은 실패했다. 1000년 이상 예루살렘을 비롯한 레반트지역을 점령한 이슬람 세력은 이미 그 땅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다. 또 영적 해방군으로 여겼던 자신들을 적대시하고 백안시하는 현지 분위기는 십자군의 사기를 꺾었다.
이후 학자들마저 십자군 원정의 끝을 7차로 볼 것인지 10차로 볼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흐지부지 끝을 맺었다. 4차 원정은 제위 싸움에 끼어든 십자군이 기독교 국가인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약탈하는 반동적 행태를 보였다. 이후 십자군은 정치적 욕심과 상업적 이해관계에 얽혀 성지 회복이라는 명분을 잃었다. 계속되는 십자군은 신의 이름으로 끊임없이 약탈하고 학살했다. 돈을 위해 값싼 면죄부가 수없이 팔려나갔고 거룩의 가면을 쓴 종교는 또 하나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 정통 기독교가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짜이거나 본질에서 벗어난 사이비(似而非) 종교로 전락한 역사적 경험이다.
종교적 신념이 세속의 욕심과 결합해 역사를 퇴행시킨 사례는 멀리서 찾을 필요가 없다. 지난해 12월 3일 계엄령 선포 전후로 드러난 대한민국 종교의 행태를 보면 사이비 종교의 실체를 알 수 있다.
계엄 정국에서 건진법사 전성배씨와 지리산 도사 명태균으로 대변되는 무속 세력은 권력과 욕망을 추구하는 사이비 종교의 행태를 가감없이 드러냈다. 국민이 꿈꾸지도 못할 거액의 뭉칫돈이 하찮게 굴러다니고 권력의 심부에서 매관매직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종교의 가면을 쓴 사이비의 속살을 보여줬다. 정통 기독교의 얼굴로 순수한 신앙 열정을 내세우던 일부 기독교 세력의 혹세무민하는 행태도 사이비와 다름없다.
한국 정통 기독교로부터 이단시 되는 신천지와 통일교, 무속 등은 논외로 일부 기독교 세력은 종교의 이름만 있을 뿐 본질은 무속이나 정치세력과 다름없다는 비판을 마주했다.
깊은 신학적 고찰과 다양한 행태에 대한 고민은 학자들의 연구에 맡기고 12.3 계엄 과정에서 언론으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불러 모은 전광훈 목사의 사례로 비슷한 아류를 재단해 보자.
그가 운영하는 S교회를 둘러싼 구설은 본질을 흐릴까 뒤로 한다. 우선 설교하고 교회를 운영하지만 전 목사는 직업 정치인이기도 하다. 그는 2007년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이 이끌던 한나라당에 입당해 당인(黨人)이 됐다. 이후 기독사랑실천당, 기독자유민주당, 기독자유당, 국민혁명당의 창당과 활동에 주도하며 소속 정치인의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도 자유통일당을 통해 활발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그가 개최한 많은 집회에서 경제적 이익을 위해 신용카드 가입 등 상업 행위가 “신앙의 이름으로” 행해진다.
또 그가 후원하는 많은 소규모 교회는 그의 정치적 팬덤으로 자리 잡았고 정치적 보수와 동일시하는 극보수 기독교 세력의 향도로 사회를 퇴행시키고 있다.
사이비 종교는 그들이 가진 조직력, 재정력, 그리고 신도의 맹목적 충성심을 정치적 자원으로 활용하며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그리고 힘을 과시하기 위해 끊임없이 세속정치에 관여하고 정치세력과 야합해 막대한 재정적 이익을 추구하고 법적 특혜를 통해 자신의 종교를 영속하려 노력한다.
특히 사이비 종교는 극단적 신념으로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결합하여 사회적 불신과 분열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가기 위한 출발선에 다시 섰다. 많은 사회적 합의와 절차적 대안이 필요하겠지만 사이비 종교를 청소하는 일도 미룰 수 없다.
정치와 사이비 종교의 위험한 결합을 해체하고 건강한 민주 사회를 향유하기 위해 합리성과 책임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미디어펜= 김진호 부사장 겸 주필
[미디어펜=김진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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