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구태경 기자] 크루즈 관광의 중심축이 바뀌고 있다. 거대한 선박이 한 번 들렀다 떠나는 산업에서, 지역에 머물며 문화를 즐기고 이야기를 남기는 ‘체류형 관광’으로의 전환이 시작됐다. 이제 경쟁력의 무게추는 단순한 입항 실적이 아니라, 어떤 콘텐츠로 여행객의 시간을 채우느냐에 달려 있다. K-콘텐츠와 지역의 색깔, 의료·웰니스 등 한국만의 체험 요소를 엮어내는 것이 다음 항해의 열쇠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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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얄캐리비안의 ‘스펙트럼 오브 더 씨즈’./사진=로얄캐리비안 |
결국 한국 크루즈 산업이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선박이 드나드는 물류의 항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머물고 관계를 맺는 관광의 무대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와 인프라, 그리고 지역의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관광객에게 남는 것은 이동의 편의가 아니라 ‘기억의 깊이’다. K-컬처와 바다, 그리고 지역의 정체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한국 크루즈의 미래가 시작된다. 단순한 유치 경쟁을 넘어, 사람을 머물게 하는 힘이 곧 산업의 지속성을 결정짓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정부의 해양관광 클러스터 조성과 민간 선사의 진입 촉진, 국내 전용 크루즈 개발 등도 병행돼야 한다. 국내 크루즈 산업은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구조적 한계가 산업 발전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항만별로 출입국·세관·검역(CIQ) 절차가 제각각이고 운영 주체 역시 대부분 공공기관 중심이라 현장 대응의 유연성이 떨어진다. 크루즈 선사 입장에서는 동일한 조건에서도 항만마다 행정 기준이 달라 불편이 발생하며, 승객 입장에서도 이동과 관광 과정에서 불편이 반복된다.
특히 국내 시장이 여전히 외국 선사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국적 크루즈선 도입 논의가 꾸준히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외국 선사와의 협업을 통한 상품 다변화가 더 효과적”이라며 “중국·일본 등도 외국 선사 중심의 협력 모델로 시장을 키웠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와 업계, 현장에서는 국내 크루즈 산업의 미래를 ‘콘텐츠’에서 찾는다. 일본의 하코다테나 대만의 기륭항처럼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녹여낸 체험형 관광 콘텐츠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반면 국내 기항지는 대부분 유사한 시티투어나 쇼핑 일정으로 구성돼 지역 정체성을 느끼기 어렵다.
세계 유수의 크루즈 선사들을 대신해 국내에서 운영하는 공식 총판 해외대리점 역할을 하고 있는 월럼쉬핑코리아 전세훈 대표는 “이제는 단순히 관광지를 연결하는 수준을 넘어, 지역 축제·향토음식·공예체험 등을 결합한 체험형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특히 K-팝, 한복, 전통음식 등 K-컬처를 관광 상품으로 체계화해야 외국 승객에게 ‘한국만의 이유’를 줄 수 있다”고 조언했다.
체류형 관광 실현을 위한 제도 개선도 시급하다. 현재 국내 크루즈선의 평균 체류 시간은 6~10시간에 불과하며, 터미널 ‘귀가시간’ 제한으로 야간 관광이 불가능하다. 그는 “외국 선사들은 터미널의 24시간 개방을 요구하고 있다”며 “운영시간의 유연성이 확보돼야 1박 2일 기항이나 야간 프로그램이 가능하고, 지역 체류형 관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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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공 파도타기 플로우라이더(Flow Rider)를 즐기는 관광객./사진=로얄캐리비안 |
정부 정책 중에서는 현장형 제도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출장선상심사제도, 크루즈 개별관광객 관광상륙허가 시범사업, 검역 시범사업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러한 정책들은 입항 효율성과 여객 편의를 높이며 업계의 체감 효과가 컸다는 평가다.
다만 업계는 여전히 법적 기반의 부재를 가장 큰 위험요소로 꼽는다. 그는 “현재 크루즈 관련 제도가 여러 부처에 분산되어 있어 정책 집행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며 “CIQ 절차의 표준화와 항만 인프라 개선, 관광 연계사업 육성 등을 총괄할 수 있는 ‘크루즈 특별법’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결국 한국형 크루즈 전략은 제도·인프라·콘텐츠를 아우르는 종합 해양관광 플랫폼 구축으로 귀결된다. 단순한 유치 경쟁을 넘어, K-컬처와 지역의 매력을 결합한 체류형 콘텐츠로 산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서 ‘콘텐츠 중심’으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고 있다.
이 기사는 해양수산부와 공동기획으로 제작한 기사임을 밝힙니다.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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