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권동현 기자] 정부가 반도체의 글로벌 패권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전방위로 지원해 국내 팹리스(반도체 설계) 산업 규모를 현재의 10배로 확장하기로 했다.
또한 '반도체 세계 2강' 도약을 목표로 2047년까지 약 700조 원을 투자해 세계 최대·최고 수준의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에 나선다.
이를 위해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기존 구조를 넘어 팹리스·파운드리 등 시스템반도체를 키우고 소재·부품·장비(소부장)에서도 경쟁력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정부의 이같은 반도체 육성전략은 대만 TSMC 생태계처럼 팹리스와 파운드리가 밀착 연계해 협력하는 구조를 우리나라도 구축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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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12.10./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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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인공지능(AI) 시대,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이같은 내용의 반도체산업 육성 전략을 발표했다.
정부는 우선 2047년까지 총 700조원 이상을 투입해 팹(반도체 생산 공장) 10기를 신설해 세계 최대·최고 수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기로 했다.
세계 2강의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해 경쟁국이 넘볼 수 없는 반도체 초격차 기술도 확보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메모리 분야의 우위를 지키는 동시에 신경망처리장치(NPU)와 지능형 메모리(PIM) 등 AI 특화 반도체 기술 연구개발(R&D)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전력효율·피지컬 AI의 핵심부품인 화합물 반도체와 핵심 기술로 부상한 첨단 패키징(후공정) 기술개발에도 지원을 확대하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 차세대 메모리에 2032년까지 2159억 원 ▲ AI 특화 반도체에 2030년까지 1조2676억 원 ▲ 화합물 반도체에 2031년까지 2601억 원 ▲ 첨단 패키징에 2031년까지 3606억 원을 투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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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명 대통령이 10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AI 시대의 K-반도체 비전과 육성전략 보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강환석 방위사업청 차장, 임문영 AI위원회 부위원장, 주병기 공정거래위원장,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최교진 교육부 장관,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재명 대통령,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정통부 장관, 김정관 산업부 장관,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호현 기후에너지환경부 제2차관,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2025.12.10./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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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국인 대만에 비해 취약 분야로 지적돼 온 시스템반도체의 생태계 강화도 핵심 전략으로 제시했다.
정부는 국내 팹리스를 글로벌 수준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수요기업이 기술 개발을 견인하고 파운드리가 생산을 밀착 지원하는 협업 구조를 구축키로 했다. 현재보다 팹리스 산업 규모를 10배 이상으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이다.
또한 99%에 달하는 높은 수입 의존도를 보이는 국방반도체의 기술 자립에도 나선다.
방위사업청과 협업해 소재, 설계, 공정 시스템까지 전주기 기술을 개발하고, '반도체 특별법'에 국가안보 인프라(전력망·통신망·공공데이터센터 등)에 국산 반도체를 우선 구매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특히 정부는 반도체의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광주(첨단 패키징), 부산(전력반도체), 구미(소재·부품)를 잇는 '남부권 반도체 혁신벨트'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지방 반도체 클러스터 근무 인력에 대한 유연한 노동시간 적용 및 투자 지원금 확대 등 파격적인 인센티브도 적용하기로 했다.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서는 '반도체 대학원대학'을 신설하고, 여기에 기업이 설립·운영에 직접 참여해 연간 300명의 석·박사급 인재를 양성한다.
이밖에 노광장비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인 네덜란드의 ASML을 롤모델로 삼아 글로벌 1위 소부장 기업을 키운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통해 기술·성장잠재력을 보유한 소부장 품목·기업의 R&D 등을 전폭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우리가 잘하는 반도체 제조 분야는 기업의 투자를 전방위 지원해 세계 1위 초격차를 유지하고, 경쟁력이 부족한 시스템반도체, 특히 팹리스 분야는 파운드리-수요기업 등 온 생태계를 동원해 10배로 키우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도 국가 차원의 전방위적 지원을 약속하고 나섰다.
이 대통령은 이날 보고회에서 “국가 전체 차원에서 600조 원 규모 산업 투자는 감사한 일이지만 수도권 집중과 무관하지 않다”며 “지방에 대규모 산업 개발이 필요한 경우, 기업에 토지 수용권을 부여해 개발 자체를 기업이 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초기 투자가 필요한 첨단산업에서 금산분리 원칙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에는 “금산분리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질적인 대책은 거의 다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한참 전에 이야기한 것 중 하나가 투자 자금에 관한 문제인데 일리가 있다”며 “금산분리는 독점 폐해를 막기 위한 제도이지만, 첨단산업처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분야에선 산업 발전에 저해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또한 반도체 소부장 산업과 관련해 “수입 의존도가 높고 경쟁력이 약한 소부장 분야에 대해 위기의식을 갖고 있다”며 “큰 고목만 자라면 주변 관목은 사라진다. 생태계 조성이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전력 정책과 관련해서도 반도체 산업과 연관성을 강조했다.
그는 “송전거리 비례요금제, 소위 ‘지산지소’ 원칙에 따라 전력 생산 지역의 요금을 낮추는 방향은 피할 수 없는 정부 방침”이라며 “전기요금이 지역 간 역전될 가능성도 있다. 생산비에 반영이 안 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송전 비용을 전기요금에 부담하는 시스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전력망 구축이 가능하면 지역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끝으로 이 대통령은 “기업들이 지역 균형발전에도 기여해 줬으면 좋겠다”며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남쪽 지방으로 눈을 돌려 그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미디어펜=권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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