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HD현대중공업이 이달 1일부로 HD현대미포의 합병을 공식 마무리하면서 내년부터 한·중·일 3국의 ‘거대 조선사’ 전쟁이 개막할 전망이다. 중국은 국영 조선사 통합으로 세계 최대 외형을 갖췄고, 일본은 해운사와 조선사가 사상 최초의 원팀 체제를 구성하며 역량 되살리기에 나섰다. 이에 국내 조선사들은 역량 강화를 통한 내실 다지기에 나설 전망이다.
겉으로만 보면 동아시아 전역에서 대형 합종연횡이 동시에 벌어지는 듯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성격과 무게감은 판이하다. 업계에서는 이 중 내실 강화에 합병 초점이 맞춰진 한국 조선사가 향후 우위를 잡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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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D현대중공업 야드 전경./사진=HD현대중공업 제공 |
12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 9월 CSSC와 CSIC의 통합을 앞세워 조선 외형을 사상 최대로 키웠다. 합병 법인은 총자산 및 시가총액이 각각 75조3000억 원, 56조5000억 원에 달하며 연간 영업이익 규모는 18조8000억 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세계 조선 시장 점유율 3분의 1을 차지하는 수준이다.
다만 양 조선사가 앞서 '남선(南船)'과 '북선(北船)'으로 불려온 만큼 분리된 생산시설에 의한 제약은 여전하다.
◆중·일의 ‘덩치 키우기’는 구조적 한계 직면
앞서 CSSC는 상하이·장쑤·푸젠 등 남부·동부 지역에 생산·수리·해양 엔지니어링 중심 사업을, CSIC는 랴오닝·다롄·톈진 등 북부 지역에 해군·군수·특수선 중심의 조선 기반 사업을 영위해왔다. 이 때문에 합병 이후에도 공간적·기능적 분리는 여전하다.
업계에서 2019년부터 통합을 추진했지만 실질적인 운영 일체화가 더디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실제 중국은 지난달 글로벌 발주 물량의 50%를 가져가는 등 외형 지표는 1위지만, 합병에 의한 기대효과였던 고부가 선박 포트폴리오는 여전히 얕다.
실제 올해 기준 한국이 수주한 선박 1척당 평균 톤수는 5800만 CGT로 중국 2200만 CGT 대비 2.6배에 달한다. 한국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초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분야에서 여전히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사정이 더 절박하다. 1970~80년대 세계 건조 점유율 절반을 차지했으나 지난해 일본의 선박 인도량 세계 점유율은 10% 내외에 그쳤고, 일본우선(NYK), 상선미쓰이(MOL) 등 현지 해운사조차 LNG 운반선을 한국3사에 발주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이에 따라 일본은 현 상황을 뒤집기 위해 최근 일본우선(NYK), 상선미쓰이, 가와사키기선 등 3대 해운사가 처음으로 조선사와 자본을 묶어 ‘원팀’을 꾸렸다. 이마바리조선·미쓰비시중공업이 공동 운영하는 선박 설계사 마일스(MILES)에 이들 해운사가 지분 참여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2035년까지 건조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며 1조 엔 규모의 지원·투자까지 내놨다.
하지만 일본 합병도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다. 일본 최대 업체인 이마바리조선과 JMU, 미쓰비시중공업 등 주요 조선사들의 생산 거점은 여전히 에히메·히로시마·나가사키·요코하마 등 전국에 흩어져 있다. 생산 기반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만큼 중국과 같이 통합 효과의 핵심인 공정 효율화가 제한적인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통합이 되더라도 물리적 합병이 이뤄지지 않으면 설계·기술인력의 분산을 막는 ‘지식 통합’에 가깝다”며 “이번 일본의 합병은 쇠락한 기술력을 끌어올리려는 구조조정 성격이 더 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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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오션 필리조선소 전경./사진=한화오션 제공 |
◆한국은 ‘고부가 중심’ 강화 전략…HD현대 통합+한화 북미 거점까지 갖춰
반면 한국의 조선 빅딜은 성격 자체가 다르다. HD현대중공업–HD현대미포의 통합은 위기 대응이나 몸집 키우기보다 함정·LNG·암모니아·메탄올 등 친환경·고부가 선박 중심의 미래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내실 축적에 가깝다.
또한 중국과 일본과 달리 두 회사는 애초 같은 그룹이었고 생산기지도 울산 동구에 집적돼 있어 통합 리스크가 거의 없다. 오히려 합병으로 시너지가 바로 반영될 수 있는 구조다.
더 중요한 차이는 수주 선박의 ‘단가’다. 중국이 벌크선·컨테이너선 등 단가가 낮은 양산형 선박으로 점유율을 키웠다면,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는 앞서 고부가 선박 수주 전략을 유지해왔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본격적인 합병 효과가 드러나기 시작할 내년부터 양사의 통합 시너지를 이용한 선별 수주 전략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더해 한화오션의 미국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 인수도 한국 조선업계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 재편을 가속하는 흐름으로 평가된다. 한화오션은 지난 7월 필리조선소 지분 100%를 확보하며 한국 조선사 최초로 북미 조선·방산 시장에 ‘직접 제조기지’를 구축했다.
특히 필리조선소는 미국 해군·해안경비대 프로젝트 경험이 풍부해 향후 미국 정부의 조달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가 마스가에 힘입은 한화오션의 방산·상선 양면 수주 경쟁력 강화는 물론 한국 조선업계의 덩치 키우기 전략, 글로벌 고부가 선박 공급망을 북미 지역까지 확장하는 전략적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 조선업은 이미 세계 시장에서 ‘고부가 선박의 핵심 공급자’로 자리 잡았다”며 “공룡 조선사가 늘어난다 해도 그 중 비싼 선박은 한국 중심 체제로 굳어질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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