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즈샵·전시·무대가 만든 창작 20년 생태계
외국인 60% 찾는 ‘홍대의 문화 관문’ 역할
상업화된 홍대 속 유일하게 남은 창작 플랫폼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20주년을 맞은 상상마당 홍대점에 방문한 지난 12일 금요일 오후 1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평일시간대인데도 주말처럼 활기를 띠고 있었다. 간판 아래에는 발걸음을 멈춘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멈춰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상상마당 측에서 '전체 방문객의 60%가 외국인'이라고 말한 것을 증명하듯 건물 앞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일본어·영어·중국어·스페인어 등 다양한 언어가 들려오는 현장이었다.

   
▲ KT&G 상상마당 홍대점 전경(왼쪽)과 상상마당 앞을 지나는 사람들./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KT&G 상상마당은 2005년 온라인 커뮤니티로 시작해 2007년 홍대에 복합문화예술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충남 논산과 강원 춘천, 대치동(서울), 부산까지 5곳으로 늘었으며 연간 방문객은 320만명을 넘겼다.

이날 홍대 상상마당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사부작’대는 비닐 소리와 말랑한 조명의 온기가 동시에 밀려왔다. 1층 굿즈샵에서는 창작자들의 작품을 만지작거리는 손길이 끊이지 않았다.

한쪽에서는 20대 외국인 여성 두 명이 뚱랑이 인형을 손에 쥐고 “So cute! 작가가 직접 만든 거 맞아요?”라며 직원에게 묻고 있었다.

   
▲ 외국인들이 굿즈샵에서 구경하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유럽계 관광객이 도자기를 조심스레 들어 빛에 비춰보며 “핸드메이드 맞지?”라고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작가들이 직접 만든 문장집, 핸드메이드 귀걸이, 독립출판물 등 모두 만져보고 넘겨보는 손길의 속도가 달랐다. 상업적인 '굿즈 존'이 아니라 ‘작품을 고르는 공간’에 가까웠다.

2층 계단을 오르는 흐름은 마치 지하철 환승 구간처럼 자연스러웠다. 전시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유리창 너머를 기웃거리며 입장 절차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

그 옆에서는 국내 20대 여성 두 명이 굿즈를 내려다보며 “여기 오면 사고 싶은 게 너무 많아”라며 웃었다. 단순 소비가 아니라 ‘홍대에서만 사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진 방문객들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 상상마당 홍대점 2층에서 판매하고 있는 뚱랑이 굿즈./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홍대 상상마당 3층부터는 크라잉넛 30주년 전시가 시작됐다. 전시가 주제였지만, 그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사람들이 전시를 대하는 태도였다.

입장객 30명이 동시에 들어오면서도 소음은 거의 없었다. 누군가는 유리 진열장에 바짝 다가가 과거 라이브클럽 사진을 들여다봤고, 누군가는 첫 데모 테이프 앞에서 스마트폰 폴더를 열어 과거 플레이리스트를 찾고 있었다.

외국인 관람객들은 번역 패널을 천천히 읽으며 “한국 펑크씬이 이렇게 오래됐어?”라며 감탄했다.

4층의 멤버 개별 작업실 구역에서는 사람들이 몸을 최대한 숙여 가사 노트를 들여다봤다. 구겨진 종이와 낡은 기타 피크 앞에서 관람객들은 자연스레 속도를 늦췄다. ‘창작의 냄새’를 묵묵히 감상하는 듯한 공기였다.

   
▲ 상상마당 홍대점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라잉넛 30주년 기념 전시 표어./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5층의 몰입형 공간에서는 음악이 울리고, 관람객은 리듬에 맞춰 움직이며 조용히 영상을 감상했다. 전시는 음악이 아닌 ‘창작자 30년의 기록물을 훔쳐보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상상마당 주변에는 자전거를 세워두고 기다리는 젊은 유럽인 커플, 포스터 벽 앞에서 인증 사진을 남기려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 상상마당 홍대점에 전시된 크라잉넛 무대 포스터./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예전 홍대가 한국 젊은층 중심의 인디 문화였다면, 지금은 세계인이 한국 창작 생태계를 경험하러 오는 첫 장소로 자리 잡았다. 상상마당은 그 관문의 중심에 서 있다.

상상마당은 2007년 개관 이후 공연·디자인·영화·전시·레지던시 등을 잇는 복합 창작공간으로 20년을 채웠다.
상업 공간으로 변모한 홍대에서도 ‘창작자를 지원하는 원래의 역할’을 잃지 않은 몇 안 되는 장소다.

   
▲ 상상마당 홍대점에 전시된 크라잉넛 무대 장비./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지하 공연장은 여전히 신인 밴드들의 등용문이다. 크라잉넛은 주 2~3회 무대를 채우고, 나머지 요일에는 인디 밴드·싱어송라이터들이 설 곳을 마련한다.

실제로 상상마당은 인디 음악계를 발굴하는 '밴드 디스커버리', '나의 첫 번째 콘서트' 등 음악지원사업을 통해 아티스트에게 공연 기회 등을 주고 있다. 국내 대표 사진가 지원 프로그램인 'SKOPF'를 통해 사진가 54명을 선정해 전시 기회도 마련했다. 이러한 활동을 인정받아 2015년, 2023년 메세나 대상 '대통령 표창'을 2차례 수상했다.

상상마당 관계자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저희 역할은 변하지 않았다. 창작자를 발굴하고, 표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을 나서자, 방금 공연 리허설이 끝난 듯 묵직한 베이스 진동이 땅을 울렸다. 건물 앞에서는 외국인 관광객이 굿즈샵에서 산 쇼핑백을 흔들며 친구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상상마당은 20년이 지난 공간이 아니라 20년째 ‘현재진행형’으로 움직이는 창작의 현장이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