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업계, "제네릭 약가 인하 신약 개발 증가하는 단순 논리"
2012년 약가 인하 당시에도 제약사 및 환자 부담으로 이어져
신약 개발 유도 정책 및 필수의약품 생산 안정성 우려 숙제
[미디어펜=박재훈 기자]제네릭(복제약) 약가를 대폭 낮추려는 정부의 개편안이 과거 2012년 ‘일괄 약가인하’와 같은 악순환을 재현할 수 있다는 우려를 키우고 있다. 혁신 신약 보상 강화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제약업계에서는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과 신약개발 의지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약가 인하는 전통 제약사 위주의 매출 감축 현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연구개발 등에 들어가는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다. 특히 장기적으로 볼 때 일본과 마찬가지로 제약사 간 구조조정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통상국가 수준으로 낮추는 제네릭…제약사 타격은 뒷전?

   
▲ 보건복지부 정부세종청사./사진=복지부


15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11월 제22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복제약과 특허만료 오리지널 의약품의 약가를 현행인 오리지널의 53.55% 수준에서 40% 안팎으로 낮추는 약가제도 개선방안을 감행한다고 밝혔다.

제네릭 약가를 한 번에 떨어뜨리기보다는 2026년부터 3~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하하면서 현재 약가 수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주된 골자다. 정부는 해당 조치로 연간 1조 원 안팎의 약품비를 절감하고 절감 재원을 혁신 신약과 희귀질환 치료제에 우선 배분하겠다는 복안이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제네릭 약가를 주요국과 유사한 40%대로 맞추겠다는 점이다. 현재 53.55% 수준인 약제는 2026년 이후 3년간 50%로 우선 낮춘 뒤 추가 논의를 거쳐 40%대로 추가 인하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45~50% 구간에 있는 약제는 2027~2029년 사이 40%대로 인하하고 이미 45% 미만인 약제는 추가 인하 대상에서 제외하는 안이 유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제네릭 약가 평균은 약 25% 떨어지고 상위 10개 제네릭 품목에서만 연 1400억 원대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신 정부는 혁신 신약에 대한 인센티브를 내세우고 있다. 희귀질환·중증질환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 기간을 현재 최대 240일에서 100일 이내로 줄이고 약가유연계약제 적용 대상을 대폭 넓혀 위험분담과 조건부 약가를 적극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또한 혁신형 제약기업에는 계단식 인하율을 완화해 수익성을 일부 보전해주는 방안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공식 설명에서 “복제약 가격이 높아 제약사가 신약개발 대신 제네릭에만 매달린다”는 문제의식을 반복적으로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제약업계의 시각은 정반대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성명에서 “이미 원가 수준에 근접한 제네릭 약가를 추가로 낮추면 기업으로서는 수익성이 가장 낮은 필수의약품부터 생산을 줄일 수밖에 없다”며 “이는 수입 의존도 심화와 품절, 공급중단으로 이어져 국민 생명을 위협하는 의약품 공급망 불안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제네릭 약가를 깎으면 신약 개발이 늘 것이라는 단순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2012년의 칼바람 재현…누구를 위한 재편안인가

   
▲ 내년 약가 조정 정책으로 인해 제약사들의 실적 개선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사진은 기사와 무관)/사진=픽사베이


앞선 2012년 약가 일괄 인하는 업계가 반발하는 대표적인 선례로 거론된다. 당시 정부는 6500여 품목의 약가를 평균 14% 인하해 연간 1조7000억 원의 약품비를 아끼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해당 기간 약가 인하 영향권에 있던 제약사의 매출은 최대 51% 감소했다. 더 큰 문제는 비급여 의약품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약가 인하에 노출된 제약기업의 비급여 의약품 수는 그렇지 않은 기업 대비 32% 증가했다. 이로 인해 환자들의 본인부담금과 전체 의료비 부담이 오히려 커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정부가 ‘건보 재정 절감’을 내세웠지만 장기적으로는 의료비 구조를 왜곡하고 산업 기반까지 약화시켰다는 평가다. 이번 개편안을 두고 2012년의 약가 인하 부작용이 재연될 수 있다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등재 제네릭에 대한 약가 재조정이 본격화될 경우 제약사들은 추가 인하를 피하기 위해 생물학적동등성(BE) 재시험 등의 전략을 모색하게 된다.

이는 정부와 기업 모두에 행정 및 재무적 부담만 키울 수 있다. 연 매출 100억 원짜리 제네릭의 약가가 53.55%에서 40%로 떨어질 경우 연간 10억~15억 원 수준의 이익 감소가 발생하는 만큼 파급영향이 큰 품목일수록 BE 재시험이나 제품 단종 같은 극단적 선택이 반복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고용과 투자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2012년 이후 상당수 제약사들은 설비투자와 국내 생산을 줄이고 위탁생산·해외 판권 수출·코프로모션 등 단기 수익 위주의 사업으로 방향을 바꿨다.

업계에서는 “이번처럼 제네릭 수익성을 정면으로 건드리면 R&D(연구개발) 예산이 가장 먼저 줄어들 수밖에 없고 이는 국내 신약 개발 속도를 늦추고 글로벌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귀결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형평성과 정책 설계의 완성도도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주요국 제네릭 약가가 오리지널의 40% 수준이라고 제시했다.

하지만 이는 각국의 보험제도, 급여구조, 유통마진을 고려하지 않은 단순 수치 비교다. 특히 필수의약품 수급 안정화를 강화하겠다면서 정작 가장 낮은 가격대에 위치한 제네릭을 추가로 깎는 것은 정책 목표 간 상충이라는 지적이다.

약가 인하로 건보재정 지출을 줄이더라도 필수의약품 품절과 수입 의존 확대로 인한 위기 상황 대응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정부가 이번 약가 개편을 균형 잡힌 구조개선으로 마무리할 수 있느냐"라며 "제네릭 약가를 무리하게 낮춰 제약사의 투자 여력을 고갈시키고 필수의약품 공급 불안을 키운다면 장기적으로는 국민 건강과 국가 경쟁력 모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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