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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소윤 건설부동산부 기자 |
중대재해처벌법은 법의 취지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업 또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운영하거나 유해한 원료·제조물을 취급할 때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다하도록 하여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한다." 법 조문만 놓고 보면 산업현장의 안전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그러나 시행 4년을 향해 가는 지금, 산업현장에서 이 법이 체감되는 방식은 애초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예방은 실종되고 처벌만 남았다는 현장의 불만은 더 이상 과장이 아니다.
건설업계의 체감도는 유독 거칠다. 국내 산업재해 사망자의 절반가량이 건설업에서 발생하는 만큼 규제 강화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산업재해 '제로(0)'라는 국가적 목표 또한 당위성을 갖는다.
문제는 방향이다. 규제는 촘촘해졌지만 실효성은 높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요즘은 경영회의의 절반 이상이 안전 논의로 채워진다"며 "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지적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의 하소연은 현장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제의 본질은 기업의 의지 부족이 아닌 현장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정책 설계에 있다.
건설업은 대표적인 다단계형 산업이다. 발주–원도급–하도급–재하도급으로 이어지는 구조 속에서 실제 위험 작업은 대부분 하도급 인력이 수행한다. 그럼에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최종 책임은 원청 경영자 등에게 일괄적으로 귀속된다. 법 취지에는 부합할지 모르지만, 현장의 통제 구조와는 동떨어진 접근이다. 원청이 모든 공정을 실시간으로 관리하고 개별 작업자의 안전 상태까지 통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현행 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왜 막지 못했느냐'는 결과 중심의 판단을 내린다. 이 같은 사후적·일괄적 처벌이 반복되면서 현장은 안전을 강화하기보다 책임을 최소화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됐다. 안전보다 법적 리스크 관리가 우선순위가 되는 기형적 상황이다.
정량적 목표에 대한 집착도 문제다. 정부는 매년 사망사고 감소율을 내세워 정책 성과를 강조하고, 그 부담은 기업으로 전가된다. 사고 발생 시 감당해야 할 리스크를 우려해 신규 수주를 잠정 중단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면 이를 제도의 성공으로 볼 수 있을까. 안전 강화가 아닌 '위험 회피'만 양산한 제도의 부작용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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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4년, 예방을 위한 법은 어느새 처벌을 위한 법이 됐다. 본말전도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법의 중첩 역시 현장의 혼란을 키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이미 산업안전보건법과 상당 부분 내용이 겹치는데,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건설안전특별법 제정까지 예고돼 있다. 지난 6월 발의된 건설안전특별법은 건설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매출액의 최대 3%에 달하는 과징금이나 최대 1년의 영업정지, 나아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토록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법안 역시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과 중복·상충되는 규정이 적지 않은 데다, 법마다 의무 주체를 제각각 달리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한 상황에서 규제만 겹겹이 쌓인다면, 현장의 혼란과 위축만 가중시킬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산업재해는 누군가의 부주의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은 구조적인 위험을 안고 있고, 이를 줄이기 위한 체계적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중대재해처벌법 등 정부의 안전규제는 이런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사고=범죄'라는 일률적 접근에 머물러 있다.
처벌은 예방의 보조수단이어야지 중심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 법이 기업을 위축시키고 현장을 경직시키는 순간, 안전은 오히려 멀어진다. 예방을 위한 법이 처벌을 위한 법으로 변질된 지금, 제도의 방향을 다시 물어야 한다.
[미디어펜=박소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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