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성준 기자] “쿠팡은 책임 있는 기업으로서 현재 상황에 요구되는 모든 내용에 부응하여 잘 대처하겠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 유출된 정보에 가장 민감하다고 할 수 있는 결제 정보, 로그인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것은 지난 18개월 간 발생한 다른 정보 유출 사고와 비교했을 때 그 범위가 적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는 17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열린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청문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로저스 대표에게 대통령까지 지적한 사태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있는지 질의했던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표가) 저런 태도니까 질의할 내용이 더 있지만 안 하겠다.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해서 국민을 속이려 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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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롤드 로저스 쿠팡 대표(오른쪽)이 17일 국회 과방위 쿠팡 청문회에서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성준 기자 |
이날 쿠팡에서는 로저스 대표를 비롯해 브랫 메티스 CISO(최고정보보호책임자), 민병기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 등이 증인으로 출석했지만, 여·야 의원들의 날선 질의에도 책임을 회피하는 모호한 답변만이 이어졌다. 특히 로저스 대표는 자기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통역이 제대로 되고 있는 지를 수차례 확인하는 등 ‘소통에 문제가 있는 모습’을 계속해서 연출했다.
그러면서 ‘질문에 답변을 할 기회를 줘 감사하다’, ‘제가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쿠팡은 책임있는 기업으로서’ 등 반복적인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은 회피하는 등 의원들에게 “시간을 끌려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 동문서답 하는 것을 전략으로 들고 온 것인가. 차라리 단답형으로 답해라. 김범석 의장이 한국 사업의 최고 결정권자가 맞는가. 예스 오어 노(Yes or No)”라고 물었지만, 로저스 대표는 “나는 한국법인의 CEO다. 김범석은 쿠팡 Inc 이사회의 의장이다”라고만 답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인사치레는 다 빼고 통역해 달라. 증인은 핵심 질문에만 답하라”라고 지적했지만 불필요한 답변이 길어지자 “의미 없는 답변에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차라리 자동번역기를 화면에 띄우겠다. 의원들은 준비가 될 때까지 한국인 증인에게만 질의해 달라”고 조정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질의가 겉돌면서 ‘맹탕 청문회’에 대한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앞서 과방위는 김범석 쿠팡 Inc 의장, 박대준 전 대표, 강한승 전 총괄 등을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이들 핵심 증인 3인방은 모두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고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선임된 지 일주일이 갓 지난 로저스 신임 대표는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와 같은 원론적인 답변을 반복했고, 민병기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은 불리한 질문에 묵묵무답으로 일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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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병기 쿠팡 대외협력 총괄 부사장이 의원 질의에 말을 고르고 있다./사진=미디어펜 김성준 기자 |
쿠팡 측 인사들의 ‘미꾸라지 답변’에 의원들의 공세 수위도 높아졌다. 이훈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쿠팡 매출의 90%는 한국 시장에서 나오고 있는데, 쿠팡 존폐가 걸린 청문회에 김범석 의장이 출석은 하나는 것은 쿠팡의 한국에서 사업을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 쿠팡을 퇴출시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쿠팡의) 역할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최수진 국민의힘 의원도 “코로나19를 틈타 급성장한 쿠팡이 몸만 비대하게 커지고 정신연령은 어린아이인 채로 운영돼 왔다는 것이 드러났다”면서 “해커라고도 할 수 없는 내부인 소행으로 3400만명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재앙이 일어났다. 이를 반성해야 하는 김 의장은 도망 다니고, 대표마저 없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이번 침해사고는 수많은 국민의 개인정보와 일상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 중대한 사안임에도, 쿠팡은 책임 있는 답변은커녕 핵심 쟁점에 대해 회피성 답변으로 일관했다”면서 “이번 청문회가 끝나는 즉시 국정 조사 절차에 돌입할 것이며, 불출석한 증인들에 대해선 고발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청문회에선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국정감사를 한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쿠팡 전 대표와 가진 오찬 자리에서 인사 청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여·야 의원간 언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최민희 과방위원장은 이에 대해 “청문회 당일 센세이셔널한 뭔가를 터뜨리는 악의적인 언론플레이”라면서 논쟁이 확산되는 것을 일축했다.
[미디어펜=김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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