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2년 가까이 막혔던 홍해·수에즈 항로의 단계적 재개가 결정되면서 업황 정상화 기대와 함께 경쟁 구도 변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항로가 정상화될 경우 운송 효율은 개선되겠지만 동시에 선복 공급이 빠르게 늘어나며 운임 하락 압력이 커질 수 있어 기업들의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이와 함께 해운업계는 친환경 규제 강화에 따른 선대 교체와 연료 전환 투자가 필수가 되면서, 운임 하락에 따른 부담과 투자 여력 등을 견뎌낼 수 있느냐의 ‘체급 경쟁’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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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MM의 컨테이너선./사진=HMM 제공 |
30일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해운사들은 실제 선박을 홍해 항로에 투입하며 운항 재개 가능성을 시험하고 있다. 지난 29일 머스크의 6500TEU급 컨테이너선 ‘세바로크호’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홍해로 진입했으며 인도~미국 동부 항로에 투입됐다.
이는 홍해·수에즈 항로가 재개될 경우 희망봉 우회로 인해 늘어났던 항로가 단축되면서 해상 운송 효율이 개선될 수 있는지를 점검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항로 정상화가 긍정적인 효과만을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란 시각도 적지 않다. 선박 회전율이 높아질 경우 시장에 공급되는 선복량이 빠르게 늘어나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우회 항로 프리미엄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항로 정상화 이후에는 운임 협상력이 화주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며 “항로 선택지가 늘어나면 전반적인 운임 하방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운임이 하락하는 국면에서도 비용 부담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탈탄소 전환을 위해 5000톤 이상 선박이 온실가스 배출 허용 기준을 초과할 경우 1톤당 최대 380달러(약 52만 원)의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하는 등 사실상 친환경 연료 사용을 의무화한 상태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규제 환경이 해운사들에 업황과 무관한 대규모 투자 부담을 상시적으로 요구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처럼 단기 운임 사이클이 실적을 좌우하던 시기와 달리, 앞으로는 재무 안정성과 투자 지속 능력, 즉 체급 자체가 경쟁력의 핵심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모든 해운사가 비용 절감과 재무 개선에 나서고 있지만, 선복 규모와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차이가 나는 상황에서는 결과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관점에서 국내 대표 해운사 HMM은 체급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호한 재무 구조를 바탕으로 친환경 선박 투자와 선대 확장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어서다.
실제로 HMM은 2030년까지 총 23조5000억 원을 투자해 컨테이너·벌크·통합물류 사업과 친환경 설비 부문을 집중 육성할 계획이다. 이 가운데 14조4000억 원은 저탄소·무탄소 선박 확보와 친환경 설비 투자에 투입해, 2045년 ‘넷제로(Net Zero·탄소중립)’ 조기 달성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HMM은 선대 교체를 가속화하며 환경 규제 대응력을 시장 경쟁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2024년 기준 HMM의 전체 선대 온실가스 집약도는 2008년 대비 54.4%, 컨테이너 선대는 68.4%까지 낮아지는 등 조기 감축 성과도 가시화되고 있다.
결국 홍해·수에즈 항로 재개는 해운업 정상화의 신호인 동시에 경쟁의 기준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운임 변동성 확대와 친환경 투자 부담이 맞물린 환경에서 해운업의 성패는 단기 시황 대응이 아닌 재무 체력과 투자 지속 능력에서 갈릴 가능성이 크다.
한 해운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시황이 좋을 때만 투자해도 됐지만 이제는 친환경 전환 흐름으로 인해 불황기에도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산업이 됐다”며 “항로 정상화 이후에는 선복 규모와 네트워크, 친환경 대응 역량이 해운사의 경쟁력을 가르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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