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거래일 외국인 '폭풍 매수'
환율 공포 뚫고 증시 귀환 "원화 가치 바닥 찍었다"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급락)하면서 달러당 15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인 상승 추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길어지고 있다. 정부와 외환당국이 총력 대응을 하고 있지만 비슷한 수준에서 환율 '뉴 노멀'이 형성될 것이라는 쪽으로 시장의 예측이 수렴하고 있다. 미디어펜은 원화가치를 둘러싼 다양한 관점과 고환율 시대에 불어닥칠 여러 파급효과에 대해 시리즈로 심층 분석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홍샛별 기자]눈앞에 닥친 '환율 1500원 시대'의 공포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탈출 신호’가 아닌 역대급 ‘매수 신호’였다. 2026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 증시를 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인 1500원을 위협하며 ‘뉴노멀’ 공포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외국인 큰손들은 이를 ‘K-주식 바겐세일’ 기간으로 규정하고 공격적인 쇼핑에 나섰다.

◇새해 첫날부터 ‘바이(BUY) 코리아’… 공포를 샀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새해 첫 거래일인 지난 2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종가(오후 3시 30분 기준) 보다 2.8원 오른 1441.8원으로 장을 끝마쳤다. 지난달 24일(1449.8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은 장중 1439.0~1444.0원 사이에서 등락하며 제한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 2026년 새해 벽두부터 한국 증시를 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태도가 심상치 않다. /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주목할 점은 외국인의 반응이었다. 이날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만 약 6447억원어치를 순매수하며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통상 환율 상승은 외국인 자금 이탈의 신호탄으로 읽힌다.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 우려로 자금을 빼 온 탓이다. 

시장 전문가들은 이 같은 외국인의 귀환을 ‘환율 고점 인식에 따른 전략적 베팅’으로 해석하고 있다. 외국인 입장에선 원화가 충분히 싸졌고, 추가적인 급락 위험은 제한적이라고 판단해 저가 매수에 나섰다는 판단이다. 

지금 주식을 사면 주가 상승에 따른 시세 차익은 물론, 향후 환율이 안정화될 때 발생하는 환차익까지 챙기는 ‘이중 잭팟’이 가능해진다. 달러를 들고 있는 그들에게 한국 주식은 그 어느 때보다 싸게 살 수 있는 매력적인 자산인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도 외국인 수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총재는 이날 “내국인 기대가 환율 상승을 크게 드라이브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민연금이 거시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지금보다 헤지를 더 많이 해야 하고, 해외 투자를 줄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밝혔다.

이는 외환당국이 원·달러 환율의 1500원 돌파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시그널로 해석된다. 환율 변동성이 당국의 통제 범위 안에 있다는 신호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환 리스크(위험)를 줄여주는 요인이 된다. 덕분에 외국인은 환차손 공포를 덜어내고, 삼성전자 등 낙폭 과대 우량주를 헐값에 담는 ‘쇼핑’에 집중할 수 있었다.

◇다시 반도체 담는 큰손들…“펀더멘털 믿는다”

외국인의 매수세는 역시나 ‘반도체’에 쏠렸다. 지난해 ‘반도체 겨울론’ 등으로 부침을 겪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기술주에 외국인 매수세가 집중됐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황이 AI(인공지능) 수요 확대와 함께 2026년에도 견조할 것이라는 믿음이 반도체 투심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단순히 환율 효과만 노린 단기 자금이 아니라, 한국 제조업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을 신뢰하는 스마트 머니가 유입되고 있다는 신호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환율이 급등하면 환차손을 우려해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지금은 원화 약세가 수출 기업의 실적 방어 기제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감과 가격 메리트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공포에 질린 개인 투자자(개미)들은 시장을 떠나고, 그 빈자리를 외국인이 채우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투자자들이 고환율 공포와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이슈 등으로 미국 증시로 이탈하는 사이, 외국인은 헐값이 된 우량주를 줍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 때마다 반복되었던 “외국인은 저점에서 사고, 개인은 반등 직전에 판다”는 뼈아픈 역사가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결국 1500원 환율 시대, 우리 증시의 향방은 ‘환율 숫자’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기회로 활용하는 외국인 수급의 지속성 여부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공포 심리에 부화뇌동하기보다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되는 낙폭 과대 대형주를 중심으로 옥석 가리기에 나설 것을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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