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고가 기록에도 매물 폭탄… "신뢰 잃은 국장은 도박장일 뿐"
   
▲ 경제부 홍샛별 차장
[미디어펜=홍샛별 기자] 7일 오전 9시 8분. 코스피 지수가 4611.72를 터치했다. 4500 고지를 밟은 지 하루만에 단숨에 ‘꿈의 4600 시대’를 연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여의도 증권가의 환호성은 찰나였다. 지수가 고점을 찍는 순간에도 개인 투자자들은 매도 물량을 쏟아내기 바빴다. 

이날 오전 11시 7분 기준 외국인이 8414억 원을 쓸어 담으며 지수를 떠받치는 동안 개인은 4111억 원어치를 팔아치우며 짐을 쌌다. 4600이라는 화려한 숫자 앞에서도 개미들은 환호 대신 냉철한 ‘익절(이익 실현)’을 택했다.

최근 3일간 한국 증시에서 벌어진 수급 공방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다. 코스피가 급등한 5일 개인은 1조 5000억원을 던졌고, 6일엔 6000억원을 다시 샀다. 그리고 4600을 뚫은 오늘(7일), 또다시 대규모 매도에 나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팔았다 샀다’를 반복하는 이 현기증 나는 널뛰기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지금 한국 증시는 개인들에게 더 이상 미래 가치를 공유하는 투자처가 아니다. 오히려 세력보다 한발 먼저 치고 빠져야만 살아남는, 거대한 ‘단타(단기매매) 투전판’으로 전락했다는 서글픈 방증이다.

냉정히 말해 한국 증시에서 ‘장기 투자’는 미덕이 아닌 무능의 증거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코스피가 76.5%라는 경이적인 상승률을 기록했음에도, 개인들은 역대 최대 규모인 26조원어치를 내다 팔았다.

학습 효과는 무섭다. 지수가 올라도 대주주의 쪼개기 상장이나 불공정 합병으로 뒤통수를 맞아온 개미들은 “줄 때 먹고 튀는 게 남는 장사”라는 생존 본능을 체득했다. 4611포인트라는 신기록조차 그들에겐 ‘탈출하기 좋은 고점’일 뿐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부의 처방은 안일하기 짝이 없다. ‘국내 주식시장 복귀계좌(RIA)’ 같은 설익은 세제 혜택을 내밀며 “세금 깎아줄 테니 돌아오라”고 손짓한다. 번지수가 틀려도 한참 틀렸다. 서학개미들이 밤잠 설쳐가며 미국 주식을 모아가는 건 세금이 적어서가 아니다. 

그곳엔 주주의 재산권을 철저히 보호하는 ‘공정한 게임의 룰’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4600 돌파와 개인의 매도 행렬. 이 엇박자는 현 정부의 금융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적나라한 성적표다.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 등 시장의 근본적인 신뢰를 회복할 구조 개혁은 외면한 채, 겉만 번지르르한 숫자 놀음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신뢰가 무너진 시장에서 지수 5000은 사상누각이다. 지금처럼 개미들을 ‘단타꾼’으로 내몬다면, 그 화려한 고지는 결국 외국인들의 현금 인출기로 전락할 뿐이다. 정부는 제발 숫자에 취해 현실을 호도하지 말라. 시장은 정부보다 훨씬 더 똑똑하고, 냉정하다.

[미디어펜=홍샛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