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차익 웃음 뒤 가려진 '원가 폭탄'…안방 시장 '샌드위치' 위기
고환율 장기화 땐 내수 방어 관건…점유율 경쟁 재편 가능성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원화가치 급락)하면서 달러당 1500원 시대가 열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급증하고 있다.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작년 말 원·달러 환율이 1430원대까지 떨어지는 등 하락세를 보이며 안정을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장기적인 상승 추세를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산업계도 환율 변동 영향을 크게 받는다. 수출이 많은 업종에는 환율 상승이 유리하겠지만 원자재를 수입하는 업종은 부담이 커진다. 이에 미디어펜은 고환율 시대에 국내 업종별 영향을 짚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미디어펜=김연지 기자]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위협하는 고환율 국면에 접어들면서 국내 자동차 업계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완성차 업계는 단기적으로 환차익에 따른 수익성 개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동시에 원자재·부품 조달 비용 상승과 차량 가격 인상 압박으로 내수 위축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장부상 수치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고환율이 고착화되는 '뉴 노멀' 시대를 대비한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서울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일 대비 3.1원 오른 1448.5원으로 출발했다. 환율은 지난달 29일 1429.8원까지 내렸다가 5거래일 연속 오름세를 기록하며 1500원선을 위협하고 있다.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는 등 시장 안정에 나서고 있지만 글로벌 달러 강세 흐름 속에 좀처럼 안정세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 경기도 평택항에 수출용 자동차가 세워져 있는 모습./사진=연합뉴스 제공


◆ '환차익' 수출은 호재…원가 급등에 내수 수익성 '절단'

국내 자동차 업계는 지난해 대외 변수 속에서도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거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대비 3.8% 증가한 7097억 달러를 기록하며 최초로 7000억 달러 시대를 열었다. 

특히 자동차 수출은 대미 수출 비중이 높아 관세 영향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지만 북미 시장의 견조한 수요와 관세 리스크에 대비한 선제적 대응에 힘입어 전년 대비 1.7% 증가한 720억 달러를 달성, 역대 최대 기록을 갈아치웠다. 

과거 고환율은 수출 기업에 확실한 호재였다. 달러 판매 대금을 원화로 환산할 때 발생하는 막대한 환차익이 영업이익에 즉각 반영됐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 등 완성차 업체들은 환율이 10원만 상승해도 분기 영업이익이 수천억 원 단위로 불어나는 효과를 누려왔다.

하지만 최근의 고환율 기조는 결이 다르다. 자동차 제조 원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반도체 핵심 부품과 리튬·니켈 등 배터리 원자재 상당수를 달러로 수입하기 때문이다.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 생산 원가가 가파르게 상승해 수출로 번 돈을 다시 원자재 구매에 쏟아부어야 하는 구조다. 외형상 매출은 늘어나도 실제 남는 이익은 줄어드는 '수익성 훼손'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한국은 원자재를 수입해 완제품을 수출하는 가공무역 구조라 환율 상승이 수입 비용 동반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결국 '제 살 깎아먹기' 식의 구조가 고착화될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는 결코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 좁혀지는 국산-수입차 가격차…내수 '안방 지배력' 흔들

내수 시장은 고환율의 부정적 영향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다. 고환율에 따른 원가 압박은 신차 가격 인상(카플레이션)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소비 심리가 꽁꽁 얼어붙은 상황에서 가격마저 오를 경우 내수 판매는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특히 우려되는 대목은 국산차와 수입차 간의 가격 격차 축소와 그에 따른 소비자의 심리적 저항선 붕괴다. 국산차는 수입 원가 상승폭을 고스란히 소비자 가격에 반영해야 하는 처지인 반면, 일부 수입차 브랜드는 본사의 마케팅 지원이나 파격적인 프로모션으로 인상분을 상쇄하며 점유율 방어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 중국의 저가 공세는 국내 완성차 업계를 더욱 옥죄고 있다. 중국 내 수직계열화된 공급망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한 '중국산 테슬라' 등 전략 모델들은 고환율 파고를 넘으며 내수 시장을 매섭게 파고들고 있다.

소비자 인식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비 편의성 때문에 국산차를 우선순위에 뒀지만, 이제는 수입차를 전동화 수준과 브랜드 경험을 고려한 '합리적 선택지'로 받아들이는 추세다. 국산차 상위 모델을 살 예산에 조금만 더 보태면 프로모션이 적용된 수입차나 가성비 높은 중국 생산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게 되자 소비자들이 국산차에서 수입차로 눈을 돌리는 '수요 전이'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김 교수는 "환율이 1500원에 육박하면 국내 경기 전반의 안정성이 훼손되고 내수 시장은 마비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현대차와 기아가 해외 현지 생산 비중을 늘려 환리스크를 분산하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정부 역시 대기업과 협력해 내수 활성화 대책을 병행하며 시장 지배력을 방어해야 이 위기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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