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 없는 마진은 부당”…‘관행’ 제동 건 사법부, 판도라 상자 열었다
“로열티 낮추고 물류비로 남기는” 한국형 기형 구조, 수술대 오르나
협회 “영세 본사 현실 외면”vs전문가 “투명성 강화 거스를 수 없는 대세”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한국피자헛이 가맹점주들과 벌인 210억 원대 ‘차액가맹금(물류 유통 마진)’ 소송에서 최종 패소하면서 프랜차이즈 업계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피자헛 측은 “판결을 존중하며 후속 조치를 취하겠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판결이 지난 40여 년간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을 지탱해 온 ‘수익 모델의 근본’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에 단순한 법적 패소를 넘어 ‘깜깜이 마진’에 의존해 온 관행이 ‘투명한 로열티'라는 글로벌 스탠다드와 충돌하기 시작한 ‘구조적 전환점'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 서울의 한 피자헛 매장./사진=미디어펜 김동하 기자


15일 법조계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차액가맹금 수취' 자체를 불법으로 본 것은 아니다. 핵심은 '절차적 투명성'이다.

재판부는 피자헛이 가맹점 매출의 6%를 ‘고정 로열티’로 받으면서, 계약서에 기재하지 않은 차액가맹금을 별도로 챙긴 것을 ‘이중 수익’이자 ‘부당이득’으로 판단했다. 즉, 본사가 물류 유통을 통해 마진을 남기려면 사전에 이를 가맹점주에게 명확히 알리고, 계약서 등을 통해 구체적인 합의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시장의 특수성이다. 미국 등 프랜차이즈 선진국은 본사가 노하우를 제공하고 매출의 일정 비율(통상 5~10% 이상)을 로열티로 받는다. 반면 한국은 ‘가맹비 면제’, ‘로열티 0원’ 등을 내세워 가맹점을 모집한 뒤, 필수 식자재에 마진을 붙여 수익을 내는 구조가 보편화돼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판결로 본사가 물류 마진을 포기하거나 공개해야 할 경우, 줄어든 수익을 보전하기 위해 ‘로열티 인상’이나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는 ‘풍선효과(Balloon Effect)’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외식업계 관계자는 “점주들은 물류 마진도 싫어하지만, 당장 내 통장에서 현금이 빠져나가는 로열티 인상에는 더 민감하다”며 “수익 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본사와 점주 간의 갈등이 제2, 제3의 소송전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현장의 위기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는 “영세 가맹본부가 96%에 달하는 한국 현실을 외면한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협회는 “국토가 좁아 물류 공급이 용이한 한국적 특성상 자연스럽게 형성된 관행을 부정하면, 자금력이 약한 중소 본사들은 줄도산할 수밖에 없다”며 산업 생태계 붕괴를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진통을 ‘산업 고도화’를 위한 필수 과정으로 본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번 판결은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이 그동안 불투명한 수익 구조에 기대어 양적 성장에만 치중해왔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며 “당장은 업계의 혼란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투명성을 요구하는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본사와 가맹점이 ‘새로운 합의점’을 찾아가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를 바탕으로 신뢰를 구축해야만 K-프랜차이즈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번 사태는 수조 원대 자금이 오가는 프랜차이즈 M&A(인수합병) 시장에도 찬물을 끼얹었다. 그동안 사모펀드(PEF) 등 재무적 투자자들은 프랜차이즈를 인수해 단기간에 기업가치를 높여 되파는 전략을 취해왔는데, 그 핵심 수단 중 하나가 물류 마진을 통한 영업이익 극대화였다.

IB업계 관계자는 “이제 투자자들은 매물을 검토할 때 재무제표상의 영업이익뿐만 아니라, 수익 구조의 ‘법적 리스크’를 1순위로 따지게 될 것”이라며 “과도한 유통 마진에 의존하는 브랜드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하락을 피할 수 없고, 투명한 로열티 구조를 갖춘 브랜드가 재평가받는 ‘옥석 가리기’ 장세가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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