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등 국가 보안 시설 블러 처리 없이 표기 논란
업계, 데이터 주권·역차별 문제 등 우려 목소리 커져
[미디어펜=배소현 기자] 구글과 애플의 고정밀 지도 반출 여부를 둘러싼 한국 정부의 판단 시한이 임박한 가운데, 업계에서는 국가 안보를 우려하는 목소리와 함께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목소리가 커진다. 최근 구글과 애플의 지도 서비스에 청와대 등 국가 중요 시설이 가림처리(블러처리) 없이 표시되면서 고정밀 지도 반출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더욱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 사진=픽사베이 제공


20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번 주 중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신청한 구글과 애플을 만나 관련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이 자리에서 양 사가 지도 반출을 요구하는 배경을 듣고 정부가 제시한 반출 조건에 대한 수용 여부를 점검할 전망이다. 정부는 구글의 신청 건에 대해서는 다음 달 5일까지, 애플에 대해서는 오는 3월 3일까지 반출 여부를 각각 결정해야 한다.

그간 정부는 1대 5000 축척의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을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불허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구글과 애플이 재차 반출을 요청하고 미국 측이 이를 '디지털 장벽'으로 언급하면서 문제를 제기하자 정부 내부에서는 조건부 허용 가능성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토부가 검토 중인 반출 조건은 △군사·보안시설 영상 이미지(위성사진 등) 보안 처리 △좌표 표시 제한 △국내 서버(데이터센터) 설치 등 세 가지다.

이 가운데 구글은 영상 보안 처리와 좌표 제한에는 동의했지만,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에는 여전히 거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애플은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수용하겠다는 뜻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윤덕 국토부 장관은 최근 출입기자단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구글과 애플은 조건이 다르다. 애플과 논의가 잘 정리된다면 (그 사례를) 확대 적용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문제 의식으로 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애플이 정부가 제시한 조건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응하고 있는 만큼 이를 계기로 구글에도 국내 데이터센터 설치를 설득하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 "안보도, 형평성도 문제"… 업계 반발 확산

다만 업계에서는 고정밀 지도 반출이 안보 문제는 물론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정부가 통상 압박에 밀려 반출을 허용할 경우 국가 안보와 데이터 주권이 동시에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고정밀 지도 데이터가 해외 서버로 이전되면 사후 보안 관리의 실효성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공개제한 공간정보 보안심사 규정’에 따르면 정밀 지도는 외부 인터넷망과 차단된 전용 단말기와 보호구역 내에서만 가공·활용할 수 있으며, 매년 정기 보안심사와 2년 주기의 갱신 심사를 받아야 한다.

네이버·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 업체들은 이 같은 규정에 따라 국가 중요 시설이 지도에 표시되지 않도록 수시 점검을 실시하고, 위성사진과 그래픽 지도에는 블러 처리 등 보안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반면 해외 기업은 지도 데이터가 국외로 이전된 이후의 활용 과정에 대해 정부가 직접 감독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최근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실제 구글과 애플이 운영하는 지도 서비스에 청와대 등 국가 중요 시설의 위치와 명칭이 별도 블러처리 없이 표시되면서, 안보 논란 등이 재점화된 것이다.

구글 지도에서는 청와대 본관과 영빈관, 경호실 명칭이 그대로 표기돼 있으며, 애플 지도 역시 위성 모드에서 청와대 본관과 한남동 관저, 국가정보원 등 주요 국가 시설을 고해상도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네이버와 카카오 등 국내 지도 서비스는 청와대 이전 시점에 맞춰 검색을 차단하고 위성 이미지와 그래픽 지도를 블러 처리하는 방식으로 이미 보안 조치를 마쳤다.

이와 관련해서는 정부 역시 해외 지도 서비스에도 국내 업체와 동일한 수준의 보안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청와대 측은 관계 부처를 중심으로 외국계 지도 서비스 업체들과 보안시설 가림 처리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한편 현재 국토부의 측량 성과 국외 반출 협의체 내부에서는 지난해에만 여러 차례 결정을 미뤄온 만큼 올해에는 더 이상 결정을 미루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구글과 애플은 아직 정부에 보완 서류를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11일 고정밀 지도 해외 반출 요청에 대해 심의를 보류하고 구글에 대해 오는 2월 5일까지 보완 신청서를 제출하도록 의결한 바 있다. 구글이 지난해 9월 △위성 이미지 속 보안시설 블러 처리 △한국 좌표 정보를 국내외 모든 사용자에게 표시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 등에 대한 수용 의사를 밝혔으나 관련 내용을 포함한 보완 신청서는 추가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에도 결론이 미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보완 서류 제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협의체가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협의체 위원장을 맡는 국토지리정보원장 자리가 현재 공석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리더십 공백이 이어지면서 안보 관련 판단 자체가 지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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