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담보인정비율 은밀히 공유하며 경쟁 회피
개정 공정거래법상 ‘정보교환 담합’ 첫 제재 사례
[미디어펜=구태경 기자] 국내 4대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의 핵심 조건인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장기간 서로 교환하며 경쟁을 제한한 사실이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를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행위로 판단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총 2720억원을 부과했다.

   
▲ 공정거래위원회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공정거래위원회는 20일 ㈜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이 부동산 담보대출 과정에서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공유하며 경쟁을 회피한 행위가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밝혔다.

담보인정비율은 부동산 가치 대비 대출 가능 금액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대출 한도 금리 서비스 수준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거래조건이다. 공정위는 이들 은행이 최소 736건에서 최대 7500건에 이르는 담보인정비율 정보를 필요할 때마다 수시로 교환하며 각자의 대출 조건을 조정해 왔다고 판단했다.

정보교환은 법 위반 가능성을 인식한 상태에서 은밀하게 이뤄졌다. 실무자들은 직접 만나 문서 형태로 정보를 전달받은 뒤 엑셀 파일로 재정리하고 원본 문서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흔적을 제거했다. 담당자가 바뀐 이후에도 정보교환이 이어질 수 있도록 내부 인수인계까지 이뤄진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에 따르면 각 은행은 경쟁 은행의 담보인정비율보다 높을 경우 대출 회수 위험을 이유로 이를 낮추고 반대로 낮을 경우 고객 이탈을 우려해 상향 조정하는 내부 기준을 운영했다. 그 결과 4개 은행의 담보인정비율은 장기간 유사한 수준으로 유지됐고 이를 통한 경쟁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로 인해 부동산 담보대출 시장 점유율 약 60%를 차지하는 대형 시중은행 간 조건 차이가 줄어들면서 차주들의 선택권이 제한됐다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특히 담보대출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자금 조달 여건이 악화됐다는 평가다.

실제로 2023년 기준 4개 은행의 담보인정비율 평균은 정보교환에 참여하지 않은 은행보다 7.5%p 낮았으며 공장 토지 등 기업대출과 연관성이 큰 비주택 부동산의 경우 격차는 8.8%p까지 벌어졌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가 2021년 12월 시행된 개정 공정거래법상 경쟁제한적 정보교환 담합 금지 규정을 적용한 첫 사례라고 강조했다. 금융 분야를 포함해 중요 거래조건 정보를 교환하며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한 감시와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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