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기준선 직접 가해 아니어도 사업 연결 시 실사 책임 판단
참여연대 "원조 사업 인권 관리 체계 근본 개선 필요"
[미디어펜=유태경 기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한국NCP가 대우건설이 참여했던 필리핀 할라우강 댐 사업 관련 이의신청 사건에 대해 이해관계자 간 대화를 주선하기로 결정했다. 필리핀 정부 주도 사업이라는 특성상 기업의 책임 범위에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가운데, 이번 조정이 향후 해외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에서 국내 건설사들의 글로벌 리스크 관리 표준 정립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산업통상부 정부세종청사./사진=미디어펜


산업부는 30일 '2026년 제1차 한국NCP 위원회'를 열고 OECD 다국적기업 기업책임경영 가이드라인에 따른 대우건설 관련 이의신청 사건에 대한 1차 평가를 통해 조정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투만독 선주민(先住民)과 할라우강을 위한 민중행동, 기업과 인권 네트워크가 대우건설을 상대로 지난해 9월 한국NCP에 제출한 이번 사건은 지난 2012년 한국수출입은행과 필리핀 정부의 '할라우강 다목적사업(2단계)' EDCF 차관 계약이 발단이다. 당시 EDCF 사업 중 역대 최대인 2500억 원 규모로 계약하며 주목 받았다. 

이 사업은 일로일로주에 대형 댐 3개와 81km의 운하를 건설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다. 그러나 건설사업 시행 지역의 대규모 수몰 발생과 선주민 권리 침해 우려로 표류하다 2018년 대우건설이 공사를 수주하며 본격화됐고, 2025년 5월 기준 공정률은 약 77.5%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험준한 지형 문제 등으로 난항을 겪다 계획된 81km 운하 중 16km만 완공 후 2024년 11월 공식적으로 계약을 종료하고 남은 공사를 필리핀 당국에 이관한 상태다.

이의신청인(투만독 선주민 및 시민사회단체)이 제기하는 핵심 문제는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현지에서의 인권 논란이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할라우 댐 건설로 인해 16개 고지대 마을과 약 1만7000여 명의 선주민들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3개 마을은 완전히 침수됐다. 하지만 이주 대책을 보장받은 가구는 32가구에 불과했다.

특히 2020년 12월 사업에 반대하던 투만독 선주민 지도자 9명이 필리핀 군경에 의해 살해된 '투만독 학살 사건'은 국제적 공분을 샀다. 필리핀 정부는 이들을 공산당 반군으로 몰아 탄압하는 이른바 '레드태깅(red-tagging)' 수법을 사용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의신청인은 "필리핀 정부가 건설사업 시행 지역에 거주하던 선주민 인권을 침해했고, 대우건설이 시공사로서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할 인권 리스크를 사전에 파악하고 예방·완화·구제하는 '인권실사'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OECD 등 국제 기준에서는 직접 가해자가 아니어도 사업과 연결돼 있으면 실사 책임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사실 할라우 댐 사업을 둘러싼 대우건설의 인권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8년에도 국내외 시민단체가 같은 사안으로 한국 국내연락사무소(NCP, National Contact Point)에 이의신청을 제기한 바 있다. 당시 한국NCP는 시공사인 대우건설의 직접적인 가해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고, 기업의 책임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이유 등으로 조정 절차 없이 사건을 종결(기각) 처리했다.

하지만 8년 만에 한국NCP의 판단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 사이 개발원조 사업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사회적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가이드라인 제정 및 세이프가드 정책을 수립해 시행하는 등 공급망 인권실사를 기업 필수 의무로 규정하는 국제 사회 잣대가 엄격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조정 개시는 글로벌 경영 환경에서 기업이 현지 정부 등 사업 관계 내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에 대해 더 적극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NCP는 대우건설과 이의신청인 간 대화를 주선함으로써 문제해결에 기여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해 조정절차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필리핀 정부에 의해 추진되는 정부사업으로서 대우건설 기업 활동과의 연관성과 책임 범위 등이 제한적인 점을 고려해 양측 간 합의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NCP는 향후 민간위원으로 조정위원회를 구성해 양측 합의를 유도하고, 결과에 대한 최종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사건을 종결할 계획이다. 

이번 사건 결과는 향후 국내 건설사들이 해외 대형 프로젝트 수주 시 현지 인권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리스크 관리의 표준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는 "한국 정부 역시 세이프가드 정책을 수립하고도 관리 감독 의무를 협력대상국에 전가해왔다"고 지적하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원조 사업의 인권 관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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