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박재훈 기자]약가인하를 둘러싼 정부와 제약업계의 줄다리기가 숨 고르기에 들어갔다. 약가인하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 안건에서 제외되며 제동이 걸렸지만 3월을 기점으로 재논의 가능성이 남아 있어 업계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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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인하에 제동이 걸리면서 제약업계가 제네릭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변화하기에 나서고 있다./사진=제미나이 |
25일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일 열린 건강보험정책 관련 소위원회에서 약가 인하 방안을 심의 안건에 올리지 않았다. 당초 올해 제약업계 최대 현안으로 꼽히던 대규모 약가 조정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과 달리 논의 자체가 보류되면서 정책 추진에 일시적 제동이 걸린 셈이다.
약가 인하는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한 주요 수단으로 거론돼 왔다. 하지만 업계는 일괄적·대규모 인하가 R&D(연구개발) 투자 위축과 고용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특히 최근 글로벌 임상 확대와 신약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수익성 기반이 약화될 경우 중장기 경쟁력이 훼손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정책을 최종 심의·의결하는 기구인 건정심 안건에서 이번 사안이 제외된 배경에는 이러한 우려가 일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약가 인하가 단기 재정 절감 효과는 있을 수 있지만 제약·바이오 산업의 고용과 투자에 미칠 파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정부 내부에서도 제기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업계 단체의 압박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는 24일 정기총회에서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의 총력 대응을 요구하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 협회는 약가 인하가 현실화될 경우 대통령 탄원, 대국민 호소 등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강경한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산업 현장의 여건과 충분한 논의가 반영되지 않은 채 제도가 급격히 변화한다면 기업 경영은 물론 연구개발 등 각종 투자 위축과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하다”며 “한번 상실된 산업 경쟁력을 복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이 정책 철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긴장은 이어지고 있다. 정부가 3월 이후 재정 상황과 정책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안건을 다시 상정할 가능성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건강보험 재정 관리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어 약가 조정 논의 자체가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개편안에 제동이 걸린 만큼 제네릭 비중이 높은 제약사들은 이미 체질 개선과 포트폴리오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업계 내부적으로는 신규 제네릭 출시를 취소하거나 보류한 회사만 수십 곳에 달한며 제네릭으로는 수익성이 안 나온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분위기다.
대신 개량신약·복합제, 바이오시밀러, 위탁생산(CDMO) 등 상대적으로 약가 인하 충격이 덜하고 기술 프리미엄을 붙일 수 있는 영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일부는 아예 디지털 헬스케어·데이터 사업 등 비급여 기반 헬스케어 서비스로 축을 옮기는 전략도 모색 중이다.
종근당은 제네릭과 개량신약 비중이 높았으나 지난해부터 ADC(항체약물접합체), 첨단 바이오의약품 중심으로 투자 축을 변화하고 있다. 시흥 바이오의약품 R&D, 생산 단지에 투자하면서 제네릭 중심 구조에서 바이오 중심으로 체질 전환을 공식화했다. 중장기 캐시카우를 바이오로 전환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대웅제약도 제네릭 비중이 크지만 이번 이슈로 디지털 헬스케어와 데이터 기업으로의 전환을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환자 모니터링, 만성질환 관리 플랫폼 등에서 구독형·서비스형 매출 비중을 키우겠다는 계획을 내고 있으며 약가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복안으로 읽힌다.
중견제약사 중에서는 삼진제약이 신약개발에 속도를 낸다. 게보린과 제네릭 중심 내수 제약사로 분류돼 약가 인하 직격탄 우려가 컸던 삼진제약은 올해 초 “제네릭 대신 혁신 신약 개발에 집중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구조 개편 방향 자체에는 일정 부분 공감하지만 속도와 강도가 지나치면 건실한 중소 제약사와 일자리가 한꺼번에 쓸려나갈 수 있다”며 “약가를 낮추더라도 혁신 투자를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장치가 병행돼야 산업과 고용을 함께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박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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