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예술을 증명하는 것은 무엇일까. 벽에 걸린 캔버스일까, 아니면 전시장 한복판에 놓인 육중한 조각일까. 

리움미술관이 오는 3월 3일부터 선보이는 티노 세갈(Tino Sehgal)의 국내 첫 개인전은 이러한 전통적인 질문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지난 25년 간 ‘비물질적 실천’을 통해 현대미술의 경계를 확장해 온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사물이 아닌 ‘상황’ 자체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경제학과 무용을 전공한 티노 세갈의 이력은 그의 독특한 예술 세계를 설명하는 열쇠다. 그는 자원을 소비해 물질적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존의 창작 방식을 거부한다. 대신 인간의 신체, 언어, 그리고 사람들 사이의 상호작용만으로 이루어진 ‘구성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s)’을 제시한다.

   
▲ 오는 3월 3일부터 티노 세갈(Tino Sehgal)의 국내 첫 개인전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 /사진=리움미술관 제공


이 상황을 구현하는 이들은 ‘해석자(Interpreters)’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시장 곳곳에서 관람객과 마주하며 말을 걸거나 움직임을 보여준다. 관객은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관찰자에 머물지 않고, 해석자와 조우하는 순간 그 상황의 일부가 된다. 이는 일회성 퍼포먼스를 넘어 미술관이라는 제도적 공간 안에서 지속되는 하나의 ‘실재’로 존재한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작가의 철저한 '탈생산(de-production)' 철학이다. 티노 세갈의 전시에는 도록, 작품 레이블, 벽면 텍스트가 일절 제공되지 않는다. 심지어 홍보용 사진이나 영상 촬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 끊임없이 디지털 기기로 기록하고 공유하려는 현대인의 습성에 저항하며, 오직 현장에서의 직접적인 경험과 그에 따른 '기억'만이 작품을 보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 티노 세갈(Tino Sehgal) /사진=리움미술과 제공
전시는 리움미술관의 건축 공간 및 소장품과 긴밀하게 호응하도록 설계되었다. 장 누벨이 설계한 현대미술 상설전시장(M2)을 비롯해 로비와 정원 등 미술관 전체가 무대가 된다. 총 8점의 상황이 소개되며, 사운드 기반의 작품 3점은 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리움이 소장한 고전 및 현대 조각들과의 조우다. 오귀스트 로댕의 조각들이 배치된 공간에서는 세갈의 대표작 '키스(Kiss)'(2002)가 실현된다. 차가운 청동 조각과 살아있는 인간의 생명력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조각의 본질을 묻는다.

또한, 알베르토 자코메티, 안토니 곰리, 강서경, 솔 르윗 등 작가가 엄선한 리움 소장품 26점은 세갈의 ‘구성된 상황’과 어우러져 구상에서 추상으로 변화하는 거대한 흐름을 형성한다. 권오상의 사실적인 조각 옆에서 서서히 움직이는 인체는 관객에게 무엇이 조각이고 무엇이 실재인지 모호한 경계를 경험하게 한다.

리움미술관의 이번 기획은 미술관을 단순히 유물을 보존하는 창고가 아닌, 살아있는 만남과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유기적인 공간으로 변모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티노 세갈은 관람객에게 잠시 핸드폰을 내려놓고 ‘지금, 여기’의 순간에 머물기를 권한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이어지며, 개막일인 3월 3일 오후 2시에는 티노 세갈과 전시를 기획한 김성원 부관장의 토크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작가의 예술 철학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