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용현 기자]국내 항공업계의 가격 경쟁이 지속적인 가열 양상을 보인다. 국제선 여객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항공사들은 좌석 점유율 확보에 집중하면서 운임 인하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 |
 |
|
| ▲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여행객들이 출국 수속을 밟고 있는 모습./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2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에어부산·진에어·티웨이항공 등 저비용항공사(LCC)를 중심으로 봄맞이 할인 행사가 잇따라 진행되며 가격 경쟁이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국내 항공사들은 여객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정기적으로 다양한 프로모션을 선보여 왔지만, 최근에는 성수기와 비수기를 가리지 않고 특가 항공권, 한정 좌석 이벤트, 제휴 할인 등이 상시화된 상황이다.
◆과당경쟁 심화… 최저운임제는 현실적 한계
문제는 이 구조를 개별 기업이 스스로 멈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LCC는 지방거점 항공사를 포함해 9개 항공사가 경쟁 중으로 소비자 입장에서는 대체 선택지가 충분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낮은 최저 운임으로 인한 손실을 보전하기 위해 한 항공사가 운임을 인상하면 수요가 즉각 경쟁사로 이동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가격이 곧 소비자의 주요 선택 기준이 되는 시장 특성상, 선제적으로 단가를 올리는 시도는 곧바로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누구도 먼저 가격을 올리기 어려운 상황이 반복되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시장 자율에만 맡기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당경쟁이 산업 전반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구조라면 일정 부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서는 해외 사례도 거론된다. 클레망 본 프랑스 교통부 장관은 앞서 초저가 항공권 판매가 시장 질서를 왜곡하고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최저운임제’ 도입을 제안한 바 있다. 일정 가격 이하의 판매를 제한해 무분별한 덤핑 경쟁을 막자는 취지다.
이에 따라 프랑스는 유럽 내 비행 요금 최저 가격 제도에 대한 다른 EU 회원국들의 지지를 요청했으며, 네덜란드와 벨기에 등 일부 국가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국내 시장의 경우 제도 도입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한국 항공시장은 국제적으로 개방돼 있으며 외항사와 직접 경쟁하는 구조”라며 “국내 항공사에만 최저운임을 적용할 경우 가격이 더 저렴한 외항사로 수요가 이동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최저운임제를 통해 기업들이 최소한의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정작 수요가 외항사로 옮겨갈 경우 국내 기업 보호라는 정책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프랑스가 제시한 제도에 대해 유럽항공(Airlines for Europe) 등 일부 항공사와 국가들은 EU 법률상 항공사가 자유롭게 가격을 책정할 권리를 침해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국내 시장에서도 정부가 가격 하한선을 설정하는 것이 시장 개입 논란과 소비자 부담 증가라는 부작용을 동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년 묶인 최고운임 상한선… 재검토 필요성 부상
다만 현재 국내시장에 적용 중인 ‘최고운임 상한선’의 경우 일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국제선 항공 운임은 항공사별로 국토교통부에 최고운임을 신고하도록 돼 있으며 이를 초과해 판매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객실 등급별로 상한이 설정돼 있고 유가 변동에 따라 부과되는 유류할증료 역시 정부 인가 범위 내에서 책정된다.
| |
 |
|
| ▲ 현재 국제선 항공 운임은 항공사별로 국토교통부에 최고운임을 신고하도록 돼 있으며 이를 초과해 판매할 수 없다. 이에 따라 객실 등급별로 상한이 설정돼 있고 유가 변동에 따라 부과되는 유류할증료 역시 정부 인가 범위 내에서 책정된다./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
항공권 가격은 기본운임에 유류할증료, 공항이용료, 각국 세금 등이 더해져 구성된다. 이 가운데 기본운임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 변동되지만 그 위에는 명확한 ‘천장’이 설정돼 있는 셈이다.
실제 각 항공사별 홈페이지 공시를 보면 최근 수요가 늘어난 인천~나리타 노선 일반석 기준 최고운임은 제주항공·진에어·티웨이항공 등 국내 LCC 모두 67만 원으로 동일하게 설정돼 있다. 항공사별로 매년 신고하는 방식이지만 주요 노선의 상한선은 사실상 동일한 수준에서 형성돼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 최고운임 상한선이 물가상승률에 따른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적용 중인 상한선은 약 10년 전 마련된 기준을 토대로 유지되고 있다.
즉 물가 상승을 포함해 인건비, 정비비, 환율 변동 등 최근의 비용 구조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항공 산업은 대표적인 고정비 중심 산업이다. 항공기 도입·리스 비용, 정비 인력 인건비, 공항 사용료, 연료비 등 대부분의 비용이 외부 환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최근 수년간 고환율 기조가 확대되면서 비용 부담이 커지자 지난해 국내 LCC들의 영업손실은 수백억 원에서 많게는 수천억 원 규모로 확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 상한선이 장기간 사실상 고정돼 있다면, 성수기 수요를 통한 수익 회수 여력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결국 업계에서는 최저운임제 도입과 같은 직접적인 가격 하한선 설정은 현실적으로 어렵더라도, 최소한 현행 최고운임 상한선에 대해서는 시장 환경 변화를 반영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가격 인하 경쟁을 제도적으로 막는 방식은 부담이 크지만 이미 존재하는 상한선이 10년 가까이 조정 없이 유지되고 있다면 그 적정성 역시 점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특히 성수기 수요가 집중되는 일부 노선에서조차 상한선이 과거 기준에 묶여 있다면 항공사들은 비수기 할인 경쟁으로 발생한 손실을 충분히 보전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설명이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통상 항공사는 비수기 저가 판매로 낮아진 수익을 성수기 고운임으로 일부 보전하는 구조”라며 “그러나 상한선이 낮게 측정돼 있다면 이러한 수익 조정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용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