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동하 기자]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의 '대산 1호 프로젝트'가 마침내 닻을 올렸다. 경쟁사 간 설비 통폐합이라는 전례 없는 빅딜이 성사되면서 석유화학 업계의 시선은 자연스레 여수와 울산 국가산업단지로 쏠렸다. 범용 제품의 구조적 공급 과잉을 견디지 못한 국내 주요 화학사들의 생존형 합종연횡이 본격적인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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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유화학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여수산업단지 전경./사진=미디어펜 김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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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HD현대오일뱅크·HD현대케미칼·롯데케미칼이 제출한 사업재편계획서 최종안을 승인했다.
사업재편계획에 따르면 롯데케미칼 대산 사업장을 분할한 후 현대케미칼과 합병해 나프타분해설비(NCC) 및 다운스트림 설비를 통합 운영한다. NCC 110만t이 감축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주주사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통합 신설법인에 각각 6000억원 씩 총 1조 2000억원 규모의 증자에 나선다.
현대케미칼의 지분구조는 기존 6:4에서 5:5로 조정된다. 향후 기업 간 합병 관련 계약체결 및 이사회 승인, 기업분할 및 합병절차 등을 거쳐 통합법인 설립 절차를 완료할 계획이며 사업재편 기간은 3년이다.
정부는 이 통합 법인에 1조 원의 기존 대출 영구채 전환가 신규 자금 공급, 기업결합 심사 단축 등 총 2조1000억 원 이상의 지원을 제공한다. 이는 한계 자산 셧다운과 경쟁사와의 통합 같은 굵직한 자구책 없이는 정책 지원도 없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대규모 나프타분해설비(NCC)를 여전히 가동 중인 여수와 울산 산단 주요 기업들의 셈법은 한층 다급해졌다. 특히 스페셜티와 이차전지 소재로 포트폴리오 전환을 서두르고 있는 LG화학은 여수 NCC 2공장 매각을 장기간 타진해 왔으나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 최근에는 단독 매각에서 한발 물러나 동종 업계와의 지분 매각이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 다각적인 합종연횡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솔루션과 금호석유화학, 롯데케미칼의 여수 및 울산 사업장 등 다른 화학사들 역시 출혈 경쟁을 멈추고 생존을 위해 조만간 파트너 찾기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분석된다. 누가 먼저 중복 사업을 과감히 떼어내고 매력적인 밸류체인을 공유할 합작 카드를 꺼내 들지가 향후 석화업계 재편의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설비를 합치고 법인을 쪼개는 짝짓기 이면에는 복잡한 이해관계자 역학이라는 뇌관도 도사리고 있다. 적자 설비 폐쇄는 필연적으로 대규모 유휴 인력을 발생시키며 이는 노조의 강력한 반발과 지역 경제 위축으로 직결된다. 실제로 롯데와 HD현대라는 전혀 다른 조직 문화를 가진 두 대기업이 절반씩 지분을 나눈 구조에서 인사 제도 통합과 인력 재배치를 두고 실질적인 마찰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여수와 울산의 다른 기업들 역시 향후 파트너십을 맺는 과정에서 고용 승계와 주주가치 훼손 논란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핵심 과제로 남았다.
전문가들은 이번 구조조정 러시가 단순한 덩치 줄이기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증권가 관계자는 "대산 1호 프로젝트는 범용 설비라는 불필요한 체지방을 걷어내는 생존형 다이어트의 첫걸음일 뿐"이라며 "중국이 범용을 넘어 고부가가치 소재 영역까지 침투를 시작한 만큼 남은 투자 여력을 스페셜티 원천 기술 확보에 쏟아붓지 않으면 짝짓기의 효과는 2~3년 내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 역시 "정부의 자금 수혈이 적자 연명을 위한 마이너스 통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배터리 소재나 친환경 재생 플라스틱 등 고부가가치 시장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독자적인 밸류체인 전환을 이뤄내는 기업만이 이번 재편기에서 최종 승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김동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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