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지 기자]전기차 시장에서 촉발된 가격 인하 경쟁의 후폭풍이 중고차 시장으로 확산되고 있다. 테슬라를 시작으로 완성차 업체들이 신차 가격을 잇달아 낮추자 중고 전기차 시세도 동반 하락하며 잔존가치가 흔들리는 양상이다. 신차 가격이 시장의 기준점 역할을 하는 구조에서 가격 인하가 반복되면서 중고차 시장의 가격 방어선이 무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8일 자동차 업계와 중고차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사이 주요 전기차 모델의 중고 시세는 전월 대비 뚜렷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테슬라가 주요 모델 국내 판매가를 최대 940만 원까지 인하하면서 시장 충격이 확대됐다. 신차 가격이 크게 낮아지면서 중고 시장에도 직접적인 충격이 가해졌다는 평가다.
직영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에 따르면 이달 중고 르노 세닉 이테크 일렉트릭 전 연식·등급 평균 가격은 전월 대비 11.6% 하락한 3800만 원으로 집계됐다. 중고 테슬라 모델3 평균 가격은 3.9% 내린 3600만 원, 모델Y는 5.3% 하락한 4446만 원을 기록했다. 기아 EV6 중고차 가격은 한 달 새 1.4% 떨어진 3091만 원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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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테슬라 수퍼차저./사진=테슬라 제공 |
◆ 신차 가격 인하 확산…중고 전기차 '가격 방어선' 붕괴
이번 시세 하락의 시발점은 테슬라의 공격적인 가격 정책이다. 테슬라는 실구매가를 낮춰 점유율을 방어했고, 이에 대응해 현대자동차와 기아도 할인 및 금융 지원을 강화했다. 기아는 EV6 전 트림 가격을 300만 원 인하했고, 일부 브랜드는 재고 물량 할인까지 병행했다.
신차 가격이 하락하면 중고차 가격 역시 연쇄적으로 조정될 수밖에 없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신차와 중고차의 가격 차이가 크게 줄어들 경우 상대적으로 신차를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이로 인해 중고 전기차는 매물 적체와 가격 인하 압박을 동시에 받는 구조다.
전기차는 배터리 성능 저하 우려와 보조금 혜택 이력 등 내연기관차보다 변동 요인이 많아 가격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반복되는 신차 할인으로 인해 중고차 시장의 매물 적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다시 추가적인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케이카가 출시 10년 이내 740여 개 모델의 평균 시세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주요 전기차의 추가 하락이 전망됐다. 모델Y 주니퍼는 3.2%, 모델Y는 2.6%, 모델X는 1.4% 하락이 예상됐다. 기아 더 뉴 EV6는 4.6%, EV4는 2.4% 하락이 전망됐다. 신차 가격 인하가 중고 시세 하방 압력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해석이다.
중고차 업계 관계자는 "제조사가 신차 가격을 빠르게 낮춰도 중고차 시세는 기존 매입가 구조에 묶여 조정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릴 수밖에 없다"며 "신차와 중고차 가격 차이가 좁혀지거나 일부 구간에서는 역전 현상까지 나타나며 매수세가 크게 위축됐다"고 말했다.
◆ '양날의 검' 가격 경쟁…잔존가치 관리가 관건
중고 전기차 가격의 급격한 하락은 신규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지만 기존 차주들에게는 자산 가치 손실이라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특히 테슬라 차주들 사이에서는 수시로 바뀌는 가격 정책에 대한 불만이 거세다.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자산 가치 하락에 따른 집단 대응 움직임까지 포착되는 등 소비자 신뢰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수시로 변동하는 가격 정책은 브랜드 프리미엄 이미지를 훼손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완성차 업체 입장에서 잔존가치 관리는 고객 충성도와 직결되는 핵심 과제다. 무분별한 가격 인하는 단기적인 판매량 증대에는 기여할 수 있으나 기존 고객의 이탈을 부추기고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가치를 떨어뜨리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전기차 시장이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완성차 업계는 '판매량 확대'와 '잔존가치 유지'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가격 인하 경쟁이 구조적인 가격 하락으로 굳어질 경우 전기차 생태계 전반의 수익 모델과 중고차 유통 구조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급 확대 국면에서 가격 경쟁력 확보와 함께 잔존가치 관리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터리 상태 기반의 객관적 가치 평가 기준 마련, 인증 중고 전기차 사업 확대, 배터리 보증 정책 강화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업계 관계자는 "올해는 배터리 가격 하락과 생산 규모 확대가 맞물리며 전기차 가격 경쟁이 본격화되는 시기"라며 "잔존가치 방어에 실패하면 단기 판매 확대 효과보다 장기 브랜드 가치 훼손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미디어펜=김연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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