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카리스마부터 ‘서울의 봄’ 탐욕까지...신작 ‘보통사람들’ 하정우는?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논쟁적인 인물, 전두환을 재해석하려는 대중문화계의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12.12 군사 반란 당일을 그리며 천만 영화가 된 '서울의 봄'에 이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재판을 중심으로 그린 영화 '행복의 나라',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의 이야기를 만들어 개봉을 앞둔 '보통사람들'까지 이른바 ‘전두환 연대기’가 완성되는 모양새다. 

각기 다른 상황 설정과 연출 의도에 따라 배우들이 구현해낸 전두환의 모습은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만큼이나 다채롭다.

‘카리스마’ 이덕화 vs ‘탐욕’ 황정민 vs ‘냉혈’ 유재명

전두환 연기의 현대적 전형을 세운 인물은 단연 MBC 드라마 '제5공화국'(2005)의 이덕화다. 당시 이덕화는 특유의 힘 있는 발성과 몰입감 넘치는 연기로 군부 독재자의 카리스마를 입체적으로 그려냈다. 비록 ‘악인 미화’ 논란이 일 정도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으나, 권력을 찬탈하는 과정에서의 치밀함과 군 조직을 장악하는 보스의 면모를 실감 나게 묘사하며 안방극장에 큰 충격을 안겼다.

   
▲ (사진 왼쪽부터) 드라마 '제5공화국'의 이덕화부터 영화 '서울의 봄'의 황정민, '행복의 나라' 유재명을 거쳐 하정우에게 간 전두환 연기.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달리 연기하고 묘사했을 지 궁금증이 일고 있다. /사진=MBC,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주)NEW, 연합뉴스


반면, 영화 '서울의 봄'(2023)의 황정민은 ‘전두두’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인물의 추악한 욕망에 집중했다. 파격적인 대머리 분장으로 외형적 싱크로율을 높인 그는, 국가의 안위보다 개인의 권력욕을 앞세운 인간의 민낯을 연기했다. 화장실에서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는 장면은 탐욕에 눈 먼 권력자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을 받았다. 이덕화의 전두환이 ‘권력자’에 가까웠다면 황정민의 전두환은 ‘찬탈자’로서의 면모를 극대화했다.

영화 '행복의 나라'(2024) 속 유재명은 앞선 두 배우와 또 다른 결을 보여준다. 10.26 사건 재판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전상두’를 연기한 그는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절제된 연기를 선보였다. 유재명의 전두환은 소리 내어 호령하기보다 낮은 목소리와 서늘한 눈빛만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냉혈한 지략가’에 가깝다. 법정 뒤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권력의 사다리를 오르는 그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서늘한 공포를 선사했다.

‘생활형 권력자’ 예고한 하정우...그가 그릴 전두환은?

이제 시선은 영화 '보통사람들'의 하정우에게 쏠린다. 하정우가 연기할 전두환은 이전의 인물들과는 또 다른 접근방식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보통사람들'은 격동의 80년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들의 시선을 담은 작품인 만큼, 하정우는 거대한 악의 축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일상적인 대화와 태도 속에 스며있는 ‘권력의 평범성’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간 하정우가 보여준 특유의 능청스러우면서도 묵직한 연기 스타일이 전두환이라는 인물과 만났을 때, 독재자가 가진 기묘한 생활감과 그 이면에 감춰진 비정함이 어떻게 조화를 이룰 지가 관전 포인트. 특히 하정우는 최근 인터뷰를 통해 "역사적 실존 인물을 연기함에 있어 단순한 모사보다는 그 인물이 가졌던 심리적 기저를 이해하는 데 집중했다"고 밝힌 바 있어, 그가 완성할 ‘하정우식 전두환’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전두환 연기의 시초, 故 박용식을 기억하며

이처럼 쟁쟁한 후배 배우들이 전두환을 연기할 수 있는 토양에는 1993년 드라마 '제3공화국'과 1995년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연이어 전두환을 연기한 故 박용식이라는 대배우가 있었다.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전두환 정권 시절 출연 정지를 당하는 고초를 겪기도 했던 그는, 역설적으로 전두환 연기의 독보적인 원조 격 인물로 남았다.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냈던 박용식의 연기가 ‘실제 같은 재현’에 방점을 찍었다면, 오늘날의 배우들은 그 토대 위에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얹어내고 있다.

현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관통하는 전두환이라는 인물은 시대마다 다른 얼굴로 변모하며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덕화의 카리스마, 황정민의 탐욕, 유재명의 냉철함을 지나 하정우가 보여줄 새로운 전두환은 과연 어떤 잔상을 남길지, 극장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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