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작가 겸 연출가 장진이 10년 만에 내놓은 신작 연극 '불란서 금고-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가 지난 7일 대학로 NOL 서경스퀘어에서 막을 올렸다. 2015년 '꽃의 비밀' 이후 오랜만에 희곡 작가로 돌아온 장진 감독은 특유의 언어유희와 리듬감이 돋보이는 블랙코미디를 선보이며 개막 초반부터 관람객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불란서 금고'는 어느 은행의 지하 비밀 금고라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 밤 12시 정전과 동시에 금고를 열기 위해 모인 다섯 인물이 하룻밤 동안 겪는 소동극을 그리며, 서로의 정체를 모른 채 오직 ‘금고 개봉’이라는 목적을 위해 결탁하고 의심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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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불란서 금고’ 공연 모습. /사진=장차, 파크컴퍼니 제공 |
작품의 주요 동력은 상황이 주는 아이러니에 있다. 앞을 보지 못하지만 세상의 미세한 소리를 읽어내 금고를 여는 유일한 열쇠가 된 ‘맹인’ 캐릭터를 중심으로, 원칙을 중시하는 ‘교수’, 본능적인 ‘건달’ 등 각기 다른 결의 욕망을 지닌 인물들이 충돌하며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낸다. 장진 연출 특유의 촘촘한 대사는 110분간의 러닝타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치며,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터져 나오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를 보여준다.
무대 위를 채우는 배우들의 면면도 화려하다. 올해 아흔의 나이로 현역 최고령 배우의 저력을 과시하는 신구는 전설적인 금고털이 ‘맹인’ 역을 맡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낸다. 장진 연출이 “신구 배우의 호흡과 존재감에서 영감을 받아 쓴 대본”이라고 밝힌 만큼, 그의 연기는 극의 무게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여기에 성지루, 장현성, 정영주, 장영남 등 이름만으로 신뢰를 주는 베테랑 배우들이 합류해 완벽한 앙상블을 완성했으며, 주종혁과 금새록 등 신선한 얼굴들이 가세해 극에 활력을 더했다.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이야기는 단순한 소동극을 넘어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부제인 ‘북벽에 오를 자 누구더냐’가 상징하듯, 인물들이 금고 안의 성과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은 현대인의 허황된 욕망과 그 이면을 비춘다. 공연을 관람한 이들은 "실컷 웃고 났는데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지는 여운이 남는다"는 평을 전하며 작품이 지닌 깊이에 주목하고 있다.
장진 감독의 장기인 유쾌한 유머와 날카로운 사회적 시선이 결합된 연극 '불란서 금고'는 오는 5월 31일까지 공연을 이어갈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석원 문화미디어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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