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기자]누리과정(만 3∼5세 무상교육) 예산을 놓고 정부와 시도 교육청의 한치 양보 없는 싸움이 계속되면서 당장 새해부터 보육대란이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는 학부모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누리과정 예산은 법령에 의거해 시도 교육청 자체 예산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정부 입장과, 전액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는 교육청의 입장차가 전혀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유치원의 경우 매달 25일 교육비 지원금이 각 유치원에 지급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앞으로 한 달 내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 경기 등을 중심으로 내년 1월분부터 교육비 지원이 끊기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매월 15일경 신용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그 다음달 20일 이후 해당 카드사에 보육비가 지급되는 방식이어서 내년 1월분 보육료가 실제 정산되기까지 앞으로 약 두 달의 여유가 있다.
■'전국적 보육대란' 현실화할 가능성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년 1월부터 모든 시도에서 유치원 교육비 및 어린이집 보육료가 일시에 끊기는 전국적인 대란은 일단 피할 것으로 보인다.
24일 현재까지 확정된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별 내년 예산안을 보면 울산, 대구, 부산 등 10개 시도 교육청은 일부나마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했기 때문이다.
다만 내년 한해 유치원과 어린이집 12개월치 예산을 모두 편성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울산과 경북, 경남, 제주, 충남 등 5곳은 유치원 예산은 12개월치 모두 편성했지만 어린이집 예산은 교육청별로 2∼9개월치만 편성했다.
또 대구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모두 8개월, 부산은 유치원 7개월·어린이집 6개월, 대전과 인천, 충북은 유치원·어린이집 모두 6개월치 예산을 편성했다.
문제는 나머지 7개 교육청이다.
이중 세종, 강원, 전북 등 3곳은 유치원 예산만 편성하고 어린이집 예산은 편성하지 않았으며 서울, 경기, 광주, 전남 등 4곳은 유치원과 어린이집 예산 모두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이처럼 17개 시도 가운데 예산 편성이 안 된 곳은 7곳, 특히 그중에서도 서울, 경기, 광주, 전남 4곳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들 4개 교육청을 중심으로 설득과 압박을 병행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숫자로 따지면 4곳에 불과하지만 서울, 경기 지역의 유아수가 타 시도에 비해 절대적으로 많아 교육비 지원 중단으로 인한 타격도 그만큼 클 것이기 때문이다.
■내년 첫 유치원비 지급되는 1월25일 전에 절충점 찾아야
누리과정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아동에게 공통으로 가르치는 국가 교육과정으로, 2012년 만 5세아에 처음 적용된 뒤 2013년 만 3∼4세아까지 확대됐다.
유치원은 교육부 소관, 어린이집은 보건복지부 소관인 까닭에 그전까지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교육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만 3∼5세 조기 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할 때 다니는 기관이 어디냐에 상관없이 공통으로 질 높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유치원, 어린이집 교육과정을 하나로 통합했다.
여기에 무상보육 개념이 더해지면서 2012년 이전에는 소득 하위 계층을 중심으로 차등 지원되던 보육비가 누리과정 도입과 함께 전 계층에 모두 동일하게 지원되는 형태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만 3∼5세 유아는 국공립과 민간 어린이집 구분없이 매월 29만원(보육료 22만원+방과후비 7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또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의 경우 공립은 11만원(교육비 6만원+방과후비 5만원), 사립 29만원(교육비 22만원+방과후비 7만원)을 지원받는다.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매월 15일경 신용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그 다음달 20일 이후 해당 카드사에 보육비가 지급되는 방식이다. 따라서 내년 1월분 보육료가 실제 정산되기까지 앞으로 약 두 달의 여유가 있다.
유치원은 매월 25일 각 교육지원청에서 관내 유치원으로 교육비 지원금을 바로 입금해주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학부모들은 지원금을 뺀 나머지 액수만 매월 25일 유치원에서 결제한다.
다시 말해 유치원의 경우 내년 1월25일까지 앞으로 한 달의 기간 내에 예산 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1월분 유치원비를 모두 학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교육부는 남은 기간 예산 편성을 하지 않은 7개 교육청, 특히 어린이집과 유치원 예산 모두 미편성한 서울, 경기 등 4개 교육청을 최대한 설득해 1월분 교육비 지원이 끊기는 최악의 상황을 막아보겠다는 입장이다.
이영 교육부 차관은 "28일 열리는 시도의회 의장단 회의에도 장관이 직접 참석해 협조 요청을 하고, 그 외 여러 경로를 통해 교육감들과 협의를 할 것"이라며 "1월 중순까지는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겠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정부의 추가적인 재정 지원은 없다는 전제를 고수하고 있어 교육감들을 설득할 여지가 더이상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이 끝내 예산 편성을 거부할 경우 대법원 제소 등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학부모의 불안을 더욱 키운다는 비판을 부를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는 광역자치단체가 시도 교육청에 제공하는 법정 전출금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의 당적이 모두 야당 소속인 시도의 경우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지방재정교부율 인상, 세출 구조조정 등 근본 대안 찾아야"
전문가들은 생애 초기 교육의 질을 결정하는 누리과정의 중요성에는 정부와 교육청 모두 이견이 없는 만큼 매년 반복되는 갈등 상황을 피하려면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 인상, 세출 구조조정 등 근본적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교육감들도 현재 20.27%인 교부율을 5%포인트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 역시 재정관련 부처와 협의를 해야 하지만 기본적으로 교부율 인상 등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송기창 숙명여대 교육학부 교수는 "누리과정이 도입되기 전인 2011년까지만 해도 교육청이 부담한 유아교육비가 5천억 수준이었으나 누리과정이 도입되면서 부담액이 3조 5천억이나 늘었다"며 "이렇게나 큰 예산을 교육청 자체 재원으로만 충당하라고 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교수는 "정부가 누리과정 지원사업에 초점을 맞춰서 세출을 구조조정하거나 세입을 증액하는 방법으로 예산을 확보, 교육청에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대변인은 "어차피 국민 세금으로 지원되는 것이기 때문에 학부모 입장에서는 그 돈이 왼쪽 주머니에서 나오든,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오든 결국은 같다"며 "정부와 교육청이 한발씩 양보를 해서 타협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은 "복지예산 100조 시대에 보육대란을 얘기하는 것이 참담하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도 이런 식의 복지 포퓰리즘 공약이 남발될 텐데, 재원조달 방안이 확보되지 않은 공약은 아예 하지 못하도록 하는 '페이고'(Pay-Go) 원칙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 이경자 회장은 "학부모들마다 사정이 다르겠지만 매월 30만원 가까이 되는 지원금이 끊긴다면 유치원에 아이를 보내지 못하는 가정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 피해가 아이들에게 돌아가지 않도록 정부와 교육청이 결단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