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직접 방문한 국제 자수원

인사동 중심부에서 약간 들어간 골목, 외국인 관광객들과 사람들이 붐비는 틈바구니로 들어갔다. 국제 자수원, 200910월 유인촌 장관과 함께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직접 방문했다는 전통 문화 공예 전문점. 옥당 장옥임 선생이 직접 운영하는 전통 수예 공방이다. 아주 어렵게 인터뷰 스케쥴을 잡았다.

장옥임 선생은 47년 넘게 직접 수예 전문 교육 과정을 운영하면서, 한국과 일본, 미국, 유럽까지도 수예 기술과 수예 공예품을 수출해서, 한국문화 관광산업을 알린 인물이다. 그 골목길을 들어서면서, 하토야마 일본 총리가 왜 그렇게 많은 전통 공예점 중에서 국제 자수원을 특정해서 방문했는지, 그 이유가 몹시 궁금했다. 그 해답은 의외였다.

옥당 장옥임 선생은 국제 자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옥당 장옥임 선생은 국제 자수원을 운영하고 있다.

영상 인터뷰 대신 지면 인터뷰로

본래 취재는 영상 인터뷰를 진행할 예정이었다. 30년 전, 장옥임 선생은 방송국 출연 요청이 쇄도해서, 그 당시 상당히 유명한 인물로 널리 알려졌는데, 방송 스케쥴을 맞추다보니 정작 전통 공예 디자인을 연구할 시간이 부족해서, 방송 인터뷰를 멀리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아직 불편해서, 지면 인터뷰로 대신했다. 장옥임 선생의 언어는 마치 표현의 비단에 자수(刺繡)를 놓는 듯 했다.

그날, 갑자기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었지요. 생각할 틈도 없었어요. 청와대 연락을 받고 나서 특별히 준비할 시간도 없었지요.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드렸던 것 같아요. 유인촌 장관님이 하토야마 일본 총리님과 함께 국제자수원에 들어왔어요. 총리 부부가 함께 와서 이곳 저곳 자세히 들러봤어요. 총리 부인이 특히 작품들을 매우 꼼꼼히 만져보면서 이야기도 했어요. 가격을 떠나서 작품 자체에 관심있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때 인사동 사람들은 무슨 영화촬영을 하는 줄 알았다고 해요. 너무 갑자기 일본 총리가 다녀가서 도대체 왜 다녀갔는지 나중에 일본 대사관에 물어봐서 알게 됐어요

일본은 한국보다 전통 수예가 더욱 발달했다고 한다. 지난 역사를 생각해보면, 일본인들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애착은 특별했다. 그처럼 일본인들은 한국보다 수예에 대한 문화산업이 매우 발달해있다고 한다. 일본 미술 잡지와 일본 TV에서 한국 수예전통공방을 소개할 때, 국제자수원이 자주 거론될 정도다. 일본 대사관에서 자체적으로 전통수예점을 조사했는데, 국제자수원이 한국을 대표하는 곳으로 선정됐던 것이다. 일본 총리의 직접적 방문은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총리 부인은 당시 전통 수예 공예품을 20~30개 정도 구입했다고 한다.

고집스런 47, 지금은...

옥당 장옥임 선생의 수예 예술은 47년 전에 시작했다. 외동딸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사랑은 장옥임 선생의 화가로서 꿈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화가로서 꿈을 펼칠 수 없게 되자, 장옥임 선생은 젊은 시절 수예를 배워야겠다는 마음을 어느 날 먹게 됐다.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던 어느 날, 전통 자수를 놓은 장면을 보게 됐어요. 아름다운 비단에 명주실로 한땀 한땀 수를 놓은 것을 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내가 가야할 길은 바로 이것이라는 마음을 먹었어요. 그게 47년 전이예요. 부모님은 결사 반대했는데, 돌아보면 후회는 없어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제 꿈이 담긴 작품의 가치를 알아주는 손님들 덕분에 지금의 모습이 있게 된 것 같아요

옥당 장옥임 선생의 작품들을 둘러보니, 전통적인 공예품들 속에서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였다. 사실 전통은 고리타분하다는 굴레가 존재한다. 그런데, 장옥임 선생의 작품에는 세련미와 색채의 조화가 특별했다. 미적 감각이 없는 일반인들도 쉽게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이유가 뭘까

오방색의 새로운 변화, 은은한 색감으로

한국의 전통색감은 오방색이다. 그러나, 국제자수원의 색감은 오방색의 한계를 초월했다. 색감의 탈피가 바로 국제 자수원만의 특별한 고집이다. 전통과 현대의 만남은 장옥임 선생의 창조적 결정에서 비롯된다. ‘전통을 지키면서, 전통을 벗어나는현대적 디자인 기법이다. 장옥임 선생은 그러한 디자인 색감을 나만의 색감이라고 지칭했다.

전통적 오방색은 색깔이 분명하고 매우 선명합니다. 전통적 색감이죠. 아주 오랫동안 그 색감에 익숙해서 저도 그 색채를 유지했어요. 어느 날 가만히 생각해보니,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했는데, 전통적 색감의 조화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게 옳다는 생각에 이르게 됐어요. 전통도 사람의 외면을 받는다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전통을 지키면서 전통을 유지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현대적 감각에 맞는 색감은 오방색보다 좀더 은은한 2차 염색 색감이라고 결론내렸지요. 그것이 바로 나만의 색감 선택입니다.”

전통 수예 공예품의 색감 배색을 다르게 했더니, 손님들의 반응은 금새 소문이 소문으로 이어졌고, 이러한 색감의 배색은 일본까지 알려지게 된 것이다. 어느 날, 일본 관광객들끼리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 일본 관광객들은 바로 그 전통 자수원이 저곳이야라면서 국제 자수원을 가르켰다고 한다. 일본인 중에는 일주일간 한국 호텔에 머무르면서 국제 자수원에서 교습을 받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사람과 예술 그 자체가 좋았지요

옥당 장옥임 선생은 어쩔수 없는 예술가이다. 47년동안 외고집 길을 걷는다면, 누구나 전문가의 정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열정과 끊임없는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다면, 누구나 각 분야에서 전문가로서 정상에 오르게 될 것이다. 장옥임 선생은 지난 30년 전, 방송 출연 제의로 작품 연구 시간이 줄어들었을 때, 홍보 보다는 작품을 선택했던 것이다. 주변에도 언론인들을 지인(知人)으로 두고 있으면서도 그저 예술에만 몰두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작가의 혼이 담긴 작품으로서 명품의 가치를 인정받게 된 것이다.

젊었을 때, 시간을 따지지 않고 열정적으로 작품활동을 했었어요. 애 낳는 날까지 수를 놓으면서 작품활동을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젊은 날 제 모습은 열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고객과 약속, 손님과 신용을 어떤 보석함보다 귀한 것이라고 믿고 있고, 지금도 변함이 없어요. 손님들을 위해서 고운 비단에 수를 놓고, 은은한 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세월이 그렇게 흘렀어요.”

그랬다. 한땀 한땀 옥당 장옥임 선생은 인생의 비단에 약속과 꿈의 수()를 놓았던 것이다. 작은 것을 해놓고 큰 것을 한 것처럼 부풀리는 홍보 전문 시대에, 전통적 예술가의 길을 고집했던 것이다. 아주 튼튼한 주춧돌 위에서 장옥임 선생의 작품은 세워진 것이다. 밑돌이 단단하므로, 장옥임 선생이 추구하는 현대적 전통 색채는 아주 견고해 보였다.

과연 하토야마 일본 총리 부부가 직접 다녀가고, 미국 부시 대통령이 직접 방문하기로 사전에 약속하고 미국 대사관에서 방문했으나 일본 일정이 앞당겨져서 오지 못했던 것이며, G20 유럽정상 특별 기념품을 제작하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의 결과는 아니었다. 옥당 장옥임 선생이 걸어왔던 그 길은 마치 비단위에 자수(刺繡)를 놓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