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과 비유의 세계에 현실의 잣대를 들이대는 격
가수 싸이의 신곡 ‘젠틀맨’ 뮤직비디오가 KBS 심의에서 방송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뒷말이 많다. 부적격 사유는 ‘주차금지’라고 적힌 공공 시설물을 발로 걷어차는 장면 때문이란다.

대중음악의 코드는 4가지로 볼 수 있다. ‘사랑’, ‘슬픔과 환희’, ‘저항과 분노’, ‘웃음과 개그, 해학’이다. ‘사랑’에 대해서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다 알 것 같고, ‘슬픔과 환희’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이 뿌리가 동일한 감정 코드다. ‘저항과 분노’는 억압 체제에 대한 약자들의 카타르시스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웃음과 개그, 해학’은 웃음의 여러 가지 모습을 표현한 말이다. 대중음악은 이 4가지 감정 코드를 건드리면서 대중과 일체를 이루며 존재한다.

우리나라는 민중의 저항과 분노의 역사는 길지만 유교적 가르침과 체제의 억압적 구조가 너무나 강고했기 때문에 그걸 제대로 표현하지는 못했다. 우리의 대중음악의 코드는 오로지 ‘사랑’과 ‘슬픔과 환희’로만 자의반 타의반 제한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표현의 자유에 일찍 눈을 뜨고 대중음악의 역사가 긴 서구는 ‘저항과 분노’ 코드의 음악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20세기 세계 대중음악을 리드해온미국과 영국의 팝음악 장르는 ‘분노와 저항’ 코드를 빼놓고서는 말할 수 없다.

공공시설물을 걷어차는 것은 체제를 발로 걷어차버리는 시원함과 함께 기득권을 뒤엎고, 아래부터 뭔가를 창조하고, 불온한 혁명도 꿈꿔보는 힘 없는 자들의 ‘몸부림’, ‘아우성’으로 보면 관대해질 수 있다.

싸이가 세계 음악에 던진 쇼크는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저항과 분노’에 더하여 ‘웃음과 개그, 해학’ 코드를 멋지게 버무린 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나라의 전통예술 속에도 ‘저항’과 ‘웃음’의 융합 혹은 승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해학’이라는 코드를 갖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안동하회별신굿이다. 싸이는 통쾌하게도 우리의 끊어졌던 해학의 전통을 되살려 세계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

공공시설물의 훼손 항목이 방송 심의기준에 들어 있다는 것이 왠지 어색하다. 현실 세계에서 누군가 공공시설물을 훼손하면 경찰이 잡아다가 처벌하면 그만이지, 왜 방송사가 그런 것까지 재단하는 것인가. 방송은 뉴스 보도를 제외하고는 허구적 스토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와 쇼 프로그램, 뮤직비디오 등을 만들고 방송을 내보낸다. ‘젠틀맨’의 방송부적격 결정은 상징과 비유의 허구적 세계에 현실의 법을 적용하는 넌센스가 아닐까.

그러나 너무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러한 모순되고 희화적인 현실의 벽에서 제2, 제3의 ‘강남스타일’, ‘젠틀맨’이 준비될 것이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