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이 14일 금융위원회가 은행에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허용한 데 대해 “ISA에 한정된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을 대승적으로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황 회장은 “투자일임업은 금융투자업의 핵심영역이지만 국민재산 증식이라는 ISA 제도 취지를 고려해 찬성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음달 14일 출시되는 ISA는 하나의 계좌에 예·적금과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 다양한 상품을 담고 순이익에 세제 혜택을 주는 상품으로 신탁형과 일임형으로 나뉜다.
현행법상 신탁형과 일임형을 모두 판매할 수 있는 증권사에 비해 은행은 신탁형만 판매할 수 있어 그간 은행권의 반발이 있었다. 일임형이 증권사가 일일이 고객의 구체적 운용지시를 받지 않아도 되는데다 광고와 홍보가 가능한 반면 신탁형은 은행이 구체적 운용지시를 받아야 하는데다 광고와 홍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 회장은 은행권의 투자일임형 ISA 허용 요구에 “금융업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며 단호하게 반대입장을 취한 바 있다. 지점이나 인력에서 증권사보다 우위에 있는 은행이 ISA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재 은행의 지점수는 7305개, 증권사는 1217개이고 펀드판매 인력수는 은행이 9만2920명, 증권사가 2만3005명으로 은행이 영업망에서는 절대우위에 있다.
다만 금융당국은 은행에 일임형 ISA의 판매를 허용하는 대신 증권사에는 비대면(온라인) 일임계약을 허용키로 해 판매망이 열세인 증권사와의 균형을 맞췄다.
황 회장은 “주요 증권사 사장단 등 금융투자업계에선 은행의 투자일임업 진출은 원칙적으로 안 될 뿐 아니라 ISA에 한정하는 것도 반대한다는 의견이 많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며 “그럼에도 ISA 활성화를 위해 증권사에 비대면 일임계약 허용 등 몇 가지 추가 조치를 취해주는 것을 전제로 수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ISA 도입 취지가 ‘국민 재산 증식’과 노후대비에 있는 만큼 금융투자업계의 이익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설명이다.
이어 황 회장은 “앞으로 은행권의 포괄적 투자일임업 진출 논의는 이것으로 종결하고 다시 거론하지 않기로 금융위원장 및 은행협회장과 구두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황 회장은 “금융당국의 비대면 일임계약 허용은 은행에 비해 대고객 접점이 부족한 증권회사에겐 단비같은 희소식”이라며 “이를 통해 판매망 열세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비대면 일임 계약을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은행은 지난해 12월부터 비대면 실명인이 허용됐지만 증권사는 전산시스템 구축 등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황 회장은 “비대면 본인확인 업무는 증권사의 준비가 끝나면 은행과 동일한 시점에 시행할 예정으로 빠르면 4월 중 가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ISA 제도가 정착되고 나면 진짜 승부는 운용 실력에서 판가름날 것”이라며 “랩어카운트 등 모델 포트폴리오 구성과 상황대처 능력이 뛰어난 증권회사가 은행보다 우위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황 회장은 “ISA에 가입한 후 실적(수익률)이 나쁘면 곧바로 계좌를 이동하는 투자자가 많아질것”이라며 “채널에 강한 은행과 운용에 강한 증권사 간 아름다운 경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영국의 ISA 제도의 초년도 가입률이 인구의 15.8%, 총소득대비 가입금액이 17.7%라는 점을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초년도 ISA 계좌수는 800만개(인구 5000만명 기준), 가입금액은 약 600만원(1인당 평균소득 3400만원 기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다만 영국에 비해 세제혜택이 적다는 점을 감안해 48조원의 절반 수준인 24조원이 ISA 계좌에 들어올 것으로 내다봤다.
제도 도입 5년 후에는 약 1000만 계좌에 3000만원이 쌓인다고 가정하고 이를 절반 수준으로 다시 줄이면 약 150조원이 유입될 것으로 전망했다.
황 회장은 “일임형 ISA에는 현재 주가연계증권(ELS)의 시장이 불안하지만 파생결합증권이 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며 “ISA가 국민재산 늘리기 핵심상품으로 자리를 잡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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