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機會)는 만남이다. 인생의 생명 태초에 자녀와 부모가 만나는 것도 기회이고, 부모가 남남에서 부부로 만났던 것도 기회이며,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자궁에서 생명으로 성장한 것도 만남이다. 만남은 곧 기회이다. 인생은 모든 것이 상대적인 세계이며, 이것은 곧 기회의 땅이다.
기회(機會)에서 기(機)는 베틀을 뜻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 방직공장이 생겼고 물레방아를 손으로 돌리지 않아도 되었다. 그 전에는 손으로 베틀을 돌렸는데, 실을 짜는 모습이 담긴 글자가 ‘機’이다. 베틀위에서 실들은 날실로 내려오고, 가로로 씨실이 엮어지는 것이다. 씨실과 날실의 만남. 이것이 베틀위에서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기회는 ‘번개’와 같습니다. 고로 너무 빨리 지나갑니다. 기회는 ‘바람’과 같습니다. 바람이 불면, 그 즉시 바람을 따라가야 바람이 몸에서 안 떠납니다. 계속 바람을 느낍니다. 이와 같이 기회가 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즉시 기회를 따라가야 됩니다. <정명석 목사 신앙 칼럼 - ‘기회를 놓치지 말아라’ 중에서 발췌>
기회는 1초만에 왔다가 간다고 한다. 기회(機會)의 한자뜻을 보면 더욱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씨실과 날실이 만나는 그 순간은 얼마나 짧은지 사람이 인지할 수 없다. 눈깜짝할 순간, 바로 그 순간으로 씨실과 날실이 만난다. 이러한 만남이 엇갈려버린다면 실은 풀리고 헝클어지고 만다. 난자와 정자도 그 만남의 순간은 찰나이다.
회(會)는 지붕아래에서 모닥불(火)을 피우고서 서로 도란도란(曰) 이야기하는 모습이다. 기회란 이런 것이다. 기회를 얻으면 마치 집을 얻은 것과 같아서 집안에서 편안한 쉼터를 얻게 된다. 집이 없으면 노숙자가 되어서 찬이슬을 맞아야만 한다.
한자어로서 ‘기회’는 곧 베틀위에서 씨실과 날실이 만나는 것이지만, 인생가운데 기회는 수만가지로 나뉜다. 각자 인생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기회인 것이다. 베틀을 짜는 엄마는 자녀의 옷을 위해서 씨실과 날실을 엮지만, 인생은 자신의 꿈을 위해서 기회를 엮는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위해서는 매순간 ‘생각’의 기회를 잡아야한다.
내 인생의 나이는 42살, 언론인으로 살아온지 8년째다. 나는 국민대학교 기계설계학과를 졸업하고, IMF 학번으로서 취직을 하지 못했었다. 2006년 그날을 기억한다. 그때가 기회였었다. 아름다운 사람들 잡지에서 시인에 등단했던 나에게 ‘명예기자’로 활동할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그 기회를 붙잡았고, 지금은 언론인으로서 굳건히 자리매김을 하고 있고, 책도 20권 넘게 집필해서 출판하기도 했다. 아주 사소한 그 기회를 붙잡아서 지금은 나의 꿈을 향해 지금도 도전해간다.
결혼(結婚)도 기회(機會)같은 것이다. 만남도 중요하겠지만, 만남이 평생 지속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결혼(結婚)의 한자뜻이 곧 ‘맺어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가운데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은 결국 기회(機會)의 성격으로 찾아온다. 그 기회를 붙잡으면, 그 기회에 묶여져서 새로운 사건과 인연을 맺는 것이고,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거품같은 것이라면 그 기회는 기회가 아닌 것이다.
기회를 선택하는 결정권은 언제나 본인에게 달린 것 같다. 기회를 붙잡기 위해서 내 자신이 기회의 사람이 되어야겠다. 그렇다고, 기회주의자(機會主義者)가 결코 되어서는 안되겠지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포착하여 기회와 결혼하는 것은 성공의 고속도로를 진입하는 올바른 길이 아닐까
*날실은 세로로 늘어진 실이며, 씨실은 가로로 엮어지는 실이다. 지구의 경도는 세로줄이고, 지구의 위도는 가로줄이다.
/ 장창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