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화뇌동은 소신없이 의견에 동조하는 것

부화뇌동이란 소신(所信)과 줏대를 갖도록 촉구(促求)하는 사자성어이다. 附는 붙다는 뜻이다. 和는 화합하다이고, 雷는 우레(천둥)이고, 同은 같다는 뜻이다. 뜻으로만 본다면 붙어서 화합하는데, 천둥과 함께 한다는 뜻이다. 천둥이 우루루룽쾅쾅쾅하면 천지만물들이 움직이듯이 그렇게 움직인다는 것으로서, 다른 사람이 하니까 마지못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소신없는 사람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부화뇌동은 자기 생각이 없고 남이 하자는 대로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들은 아부꾼이 될 수도 있고, 충성자라는 꼬리표를 붙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자신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박제(剝製)처럼 사는 인생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많은 조직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사람들, 얼마나 무서운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박수부대가 바로 부화뇌동하는 것이다.

공자가 자로에게 했던 말이 있다.

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자왈,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
공자가 말하길, 군자는 화합하면서 같지 않고, 소인은 같으면서 화합하지 않는다.

국회에 가보면 의견만 달라도 그 사람은 적군이다. 같은 당이라면 반드시 같은 표를 던져야하고, 같은 의견을 말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현 정치문화는 곧 부화뇌동과 같다. 화합은 반드시 필요한데, 같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현재 정치문화는 서로 의견이 같고, 속으로는 화합이 되질 않는다. 같은 당끼리 담합하는 것은 바로 ‘동이부화’인 것이다.

건설적인 비판을 할 수 없는 정치문화, 올바른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는 지도부가 다스리는 조직은 ‘죽은 시스템’일 수 있다. 그러한 시스템속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조직원들은 참으로 피곤할 수 밖에 없다. 창의성이 말살될 위험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뭔가 다른(異) 이야기를 하면 틀렸다고 바로 평가받는 그러한 문화, 그것은 ‘동이불화’이다. ‘화이부동’은 원탁에서 서로의 의견을 진솔하게 나누면서 비판과 의견을 공유하는 그러한 ‘토론문화’인 것이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토론문화가 정착된다면, 그러한 조직은 ‘화이부동’이 가능하다. 사실 ‘和’는 기쁜 것이고, ‘同’은 같은 것인데, 특히 여기서 ‘同’은 외부적 같음을 의미한다. 마음의 같음이 있기위해서는 ‘화합’이 필요하다. 화합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의견이 설령 다를지라도 그러한 의견과 의견이 만남을 통해서 조율될 때, 진정한 화합이 가능한 것이다. 이런 토론문화가 어디에 있을까

‘和’는 사실 어렵다. 시간도 상당히 많이 걸린다. 링컨 영화를 보면 화합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다. 옛날 신라의 화백회의(和白會議)는 만장일치제도로서 화합하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려서 결정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同’이 현실적으로 자주 애용될 수도 있다. 同은 ‘向’과 비슷하다. 방향을 같게 하는 것이 곧 ‘同’이고, 같은 울타리안에 있는 것도 ‘同’이며, 같은 가족이 ‘同’이다.

서로 떨어져 있는 것들을 울타리로 묶기만 하면 ‘同’이 되니까, 和보다는 同이 더 편한게 현실이다. 그럴지라도 同만 즐겨하다가 가장 중요한 ‘和’를 영원히 잃어버린다면, 그 조직은 무늬만 좋은 곳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조직의 힘은 화합이며, 화합의 비결은 서로 다른 의견들의 결합인 것이다.

/ 장창훈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