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시중 은행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정재찬)는 은행들의 CD금리 담합 의혹에 대해 '담합 혐의가 인정된다'는 취지의 심사 보고서를 시중 6개 은행에 보낸 것으로 지난 15일 알려졌지만 은행들은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
|
▲ 공정위에 의해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 '담합' 혐의를 받고 있는 시중 은행들이 '동의할 수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
이번 담합 의혹의 시작은 지난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7월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3.25%에서 연 3.0%로 인하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영향을 받아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그해 4월 9일 3.5%에서 7월 17일 2.92%까지 떨어졌지만 CD금리는 같은 기간 3.55%에서 3.54%로 0.01%p만 하락했다.
만기 3개월짜리 채권인 CD는 시중은행들이 단기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것으로 가계나 기업이 은행대출을 받을 때 기준금리 역할을 한다. CD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고정되면 돈을 빌려준 은행은 이익을 보지만 소비자들은 주택담보대출 등을 받을 때 높은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2012년 당시 다른 금리에 비해 낙차가 적었던 CD금리에 대해서는 이내 담합 의혹이 일었다. 공정위는 신한·국민·우리·하나·한국스탠다드차타드(SC) 등 시중은행과 일부 지방은행에 대해 현장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2012년 8월엔 이모씨 등 3명이 '금리 담합으로 피해를 봤다'며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2014년 1월 '증거 부족'으로 원고 패소 판결했다. 2013년에는 금융소비자원이 205명을 모아 금융감독원에 국민검사를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단군 이래 최장기 조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길게 이어진 CD금리 담합 의혹은 결국 올해 들어 공정위에 의해 실체가 '있는' 것으로 귀결될 확률이 높아진 상황이다. 지난 15일 한 매체는 '은행들의 과징금이 수천억 원 대를 육박할 것'이라는 보도를 내기도 했다.
공정위는 즉시 해명 자료를 내고 "현 시점에서 법 위반 여부, 과징금액 및 심의일정 등은 결정된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지만 이미 담합 혐의를 인정하는 뉘앙스의 심사보고서를 받은 은행들은 불편한 기색이다.
공정위 통보에 대해 시중은행들은 입을 모아 "담합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즉시 보도자료를 내고 "은행권은 CD금리를 담합한 사실이 없으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가 진행 중에 있고 확정되지 않은 사항으로 은행권은 CD금리 담합 관련 조사에 대해 적극 소명할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여름 CD금리 변동이 거의 없었던 이유에 대해 은행권 관계자들은 정부 당국의 '행정지도'를 근본 원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2010년 말부터 예대율 산정 때 CD를 제외하도록 권고한 바 있다. 은행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을 낮추기 위한 이 조치는 은행들이 CD 발행물량을 늘려도 그만큼 대출을 늘릴 수 없도록 사실상 제한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CD 발행은 2010년 50조원에서 2011년 33조원, 2012년 25조원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은행들은 2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CD 물량이야말로 금리 고정의 근본 원인이었다고 지목하고 있다. 당국이 CD금리를 유지하라는 권고를 직접 내린 것은 아니지만, 행정지도에 따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CD금리가 고정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은행 측 입장의 핵심이다.
한편 기업들이 정부 측의 행정지도에 따랐다가 공정위에게 담합 판정을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지난 2009년 가을 공정위는 전국 11개 소주 업체가 약 3년간 가격 담합을 통한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이유로 총 2263억 원에 달하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심사보고서를 업체들에게 보냈다.
당시 소주업계 기업들은 '국세청의 행정지도에 의한 가격 인상이었다'며 반발했고 결국 공정위와 소송까지 치렀다. 원심과 항소심에서는 공정위가 승소했지만 대법원이 2심까지의 판결을 뒤집고 업계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13년 생명보험사들이 변액연금보험 수수료율을 담합했다는 이유로 공정위가 9개 생명보험사에 과징금 총 204억5천100만원을 부과한 처분 역시 2015년 4월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의해 과징금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은행들에 대한 이번 담합 의혹이 '행정지도에 의한 나비효과'로 인정될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이번 담합 혐의에 대한 공정위의 최종 판정은 내달로 예정된 공정위 전원회의에서 내려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