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한때 '열풍'으로 언급됐던 웰빙(well-being)은 이제 국민들 사이에선 상식이 됐다. 지나치게 살이 찌면 다이어트를 해야 하고, 당장 앓고 있는 병이 없더라도 건강에 신경을 쓰며 살아야 한다는 게 당연한 일로 자리 잡은 것.
하지만 기업들의 세계에선 꼭 그렇지도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말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기업들 사이에서의 '웰빙'은 아직까지 충분히 확산되지 않은 분위기다. 위험 수준의 건강상태를 갖고서도 다이어트에 돌입하지 않고 '그저 버티는' 회사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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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된 기촉법을 시작으로 대기업 대규모 구조조정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기촉법 2.0을 지나더라도 오는 8월 원샷법이 기다리고 있어 부실 기업들의 운명이 위태로워졌다./연합뉴스 |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부감사대상기업 2만7995개 중 '만성적 한계기업' 비중은 2014년 말 기준 10.6%(2561개)다. 한계기업이란 영업이익이 너무 적어서 이자비용도 감당이 안 되는 이른바 '좀비기업'을 지칭한다. 산업 전체로 보면 '빼야할 살'이 무려 10%에 달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충격적인 것은 지난 5년간 전체 한계기업 중에서 대기업 비중이 커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소기업 대비 2배 빠른 속도로 '대기업 좀비'가 늘고 있다. 전체 한계기업 중에서는 17.0%를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계열사 중 조선, 운수, 철강, 건설 업종을 중심으로 실적이 크게 악화된 탓이다.
이런 사정에 대기업 구조조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국경제 상황을 놓고 봤을 때 아주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지만 그동안 대기업 구조조정은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다. 심지어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경우 작년 말 이후 효력을 상실했다가 지난 3일에서야 개정안이 통과돼 법의 수명이 내후년 상반기까지 연장됐다.
돌아온 기촉법에서 눈여겨봐야 할 부분은 이번 개정안 통과가 단순히 법의 생명선만 늘린 게 아니라는 점이다. 약 2개월간의 공백을 메우려는 듯 기촉법의 '수위' 또한 높아졌다. '업그레이드 기촉법'이라는 평가부터 차원이 아예 다른 '기촉법2.0'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일단 적용범위가 넓어졌다. 그동안 신용공여액이 500억 원 이상인 기업에게만 적용됐던 기촉법은 이제 금융회사에서 받은 대출이나 보증이 30억 원 이하인 중소기업을 제외한 모든 기업에 적용될 예정이다.
기촉법이 규정하는 '채권단'의 범위에 외국계 금융회사, 연기금, 공제회 등이 포함된 것도 큰 변화다. 이에 따라 3년 전 쌍용건설의 사례에서처럼 공제회가 채권단 합의에 어깃장을 놓으면서 워크아웃이 무산되는 경우를 방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이 기촉법이라는 '칼'을 최대한 신속하고 정확하게 휘두르기 위한 채비에 이미 돌입했다는 소식이 들리기 시작했다. 다만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결산실적을 기다릴 필요가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속도는 4월이 돼야 붙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예상 구조조정 폭에 대해서도 "구조조정 실무 절차는 금융기관(채권은행)들이 진행하는 것이라 지금 예상하긴 조심스럽다"고 선을 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당국의 의지는 이미 확인된 상태다. 금융감독원은 작년 상반기 대기업 신용위험 정기평가를 실시한지 6개월 만에 수시평가를 다시 실시해 연말에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금감원은 수시평가 취지에 대해 "부실징후기업의 조기적출과 신속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평가 결과는 매우 날카로웠다. 신용공여액(빚) 500억 원 이상 대기업 중 368개사에 대한 수시 신용위험평가 결과 19개사가 구조조정 대상으로 선정됐다(C등급 11개사, D등급 8개사). 상반기 정기평가 결과를 합치면 구조조정 대상 대기업은 총 54개사로 늘어나 2014년 대비 무려 20개나 증가했다. 기업들의 상황이 심각해진 것만큼이나 대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당국의 긴장감이 상당히 높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국과 금융기관들의 구조조정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 예측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기촉법의 봄'이 가고 나면 8월경에는 '원샷법(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상태인 기업들을 처리하는 기촉법으로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원샷법이 담당하게 될 확률이 높다.
원샷법은 '정상상태'이긴 하지만 과잉공급 업종에 속한 기업이 생산성 향상, 재무구조 개선 등을 목표로 사업재편을 추진할 경우 각종 규제에 대한 과세특례를 주는 법이다. 정부는 지난해 조선·건설·석유화학·철강·해운을 대표적인 과잉업종으로 지목한 바 있다.
기촉법과 원샷법의 냉엄한 평가를 받아야만 하는 대기업들에게 2016년의 봄과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계절'이 될 수도 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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