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갈수록 설자리를 잃어가는 흡연자들과 보건당국의 갈등이 깊어만 가고 있다.
세금을 지불하면서까지 흡연을 하는 이들이 불만을 호소하는 반면 부처는 외면만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1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이 최근 발간한 학술지 '근거와 가치'에 실린 '실외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 국내외 현황 검토'를 보면 실외 흡연구역 설치에 대한 정부 차원의 판단은 여러 '딜레마'를 가지고 있다.
우선 실외 흡연구역 설치에 반대 입장을 밝힌다면 정부의 담배 규제 정책에 대한 흡연자의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또 앞으로 도입될 많은 담배 규제 정책이 흡연자들을 더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간접흡연의 피해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실제로 작년 실내 흡연구역이 확대되면서 골목에 둥지를 틀고 자체적으로 '흡연구역'을 만든 흡연자들의 모습이 많아졌다.
다만 이 경우 금연구역 확대라는 정부의 정책이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만약 정부가 흡연구역 설치를 독려하거나 직접 설치한다면 정부가 흡연의 폐해를 강조하더니 흡연행위를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작년 초 담뱃세 인상 결정이 국민 보건 향상이 아니라 정부의 세수 확대를 목적으로 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던 것처럼 정부의 담배규제정책이 많은 오해를 살 수도 있다.
그래도 담배규제정책 강화로 발생하는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담뱃세 인상으로 인한 증가 수입을 흡연자를 위해 사용한다는 명분은 챙길 수 있다.
이 같은 딜레마 속에 정부는 실외 흡연구역 설치와 관련한 판단을 내 놓지 않은 채 법률에 의거해 지자체에 설치 권한을 맡기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9조는 "지자체가 흡연으로 인한 피해 방지와 주민의 건강 증진을 위해 조례로 일정한 장소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지자체들이 실외 흡연구역 관리에 애를 먹고 있다는 데 있다.
26개 실외 흡연구역을 운영하던 서울시의 경우 작년 9월 서울역 흡연부스를 임시 폐쇄하기도 했다. 이용하는 흡연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주변 환경이 악화되고 문을 열고 흡연하는 경우가 많아 냄새가 밖으로 퍼지는 등 부작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에는 가이드라인을 정해달라는 지자체와 정부가 나서서 실외 흡연구역을 만들어달라는 흡연자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 차원에서 실외 흡연구역을 만들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다"며 "다만 실외 흡연구역을 둘러싼 여러가지 문제점을 살펴보며 대책 마련을 강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규 NECA 연구원은 "어떤 시나리오를 선택하더라도 장단점은 존재하는 만큼 보건당국의 현명한 결단이 필요하다"며 "만약 실외흡연구역 설치를 허용할 경우에는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흡연구역 설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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