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뜻밖의 수로 이세돌 9단에 2연승을 거뒀다.
처음에는 실수나 악수처럼 보였지만, 결과를 보면 승리로 가는 징검다리가 됐다. 또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승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통념을 벗어난 수가 사실은 '신의 한 수'인 것을 확인한 바둑 기사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알파고의 등장을 계기로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알파고는 지난 10일 이세돌 9단과의 5번기 제2국에서 몇 가지 변칙수를 놓았다. 알파고는 초반 우하귀에서 정석을 늘어놓다 갑자기 손을 빼고 상변에 '중국식 포석'을 펼쳤다.
이후 우하귀 정석에 들여다보는 교환, 좌하귀에서 흑 두 점 움직이는 모습, 우변 5선에서 어깨를 짚는 수 등을 놓았다. 프로기사들의 시각에서 이런 수들은 이상했다.
박정상 9단은 "세계 최고수라면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라며 "알파고는 인간 고수와는 생각이 다르다"고 말했다.
양재호 한국기원 사무총장도 "이상하지만, 가치가 있는 수였다"며 "좋고 나쁨을 떠나 고수가 두는 느낌의 수는 아니었다"고 말했고 이어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완전히 없던 수는 아니다"라며 "다른 형태에서는 나오기도 했지만, 당시의 그 형태에서는 안 나오던 수였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뭔가 산속에서 혼자 공부하다가 내려온 기사가 둔 듯한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뜻이다.
양 사무총장은 "바둑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그런 수를 둘 수 있구나'라고 깨달으며 시야를 넓힐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조혜연 9단은 나아가 "알파고 등장을 전후로 바둑역사가 바뀔 것 같다"며 "바둑의 패러다임과 학습·접근 방식이 바뀔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9단은 '바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알파고가 바둑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 인간의 방식과 다르다.
조 9단은 "인간 기사는 많은 차이로 이기는 게 좋은 바둑이라고 생각해서 '최선'을 추구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인간은 바둑에서 집을 많이 짓는 데 집중한다.
반면 알파고의 목적은 승리 그 자체다. 집을 많이 짓지 않아도 최소 반집만 앞서면 이긴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이세돌 9단을 이겼다.
딥러닝 업체 마인즈랩의 유태준 대표는 제1국에서 이세돌 9단이 10집 넘는 손해를 보는 실착을 한 후에 알파고도 덩달아 실수하는 듯이 보인 것도 실수가 아니었다며 "무조건 이기는 착점을 계산하고서 둔 최선의 수"라고 분석했다.
유 대표는 "알파고가 집 차이를 많이 내고 이기는 데는 관심이 없고, 무조건 이기는 데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조 9단은 "바둑의 본질이 이기는 것이라면, 알파고는 바둑의 본질에 가까이 다가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프로기사들도 알파고처럼 바둑을 둘 수는 없다. 100% 정확한 계산력과 판단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대신 더욱 풍부하게 바둑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의 역할이다.
조 9단은 "바둑은 최대 4000년 역사를 가진 고전 게임이다. 그만큼 오랜 시간 발전해왔다"며 "과학계도 자연을 하나하나 증명해가면서 새 영역을 확장해나갔듯이 바둑의 영역이 넓어지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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