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이 논란이 되자 당초 문재인 전 대표의 영입 조건이었다는 ‘밀약설’이 대두됐다.
당 안팎에서 크게 반발하고 있지만 문 전 대표가 김 대표를 영입할 때부터 전권과 함께 비례대표 앞 번호를 협상카드로 제시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김 대표가 20일 자신을 비례대표 2번으로 배정하면서 처음으로 권력욕심을 드러내자마자 “노욕”이라며 비판이 쇄도했고, 21일에는 그의 부재중에도 비대위가 열려 비례대표 2번이 14번으로 후순위 조정됐다.
김 대표는 이날 당무를 거부한 채 기자들과 만나 “내가 자기들한테 보수를 받고 일하는 거야, 뭐야”라며 “내가 애착을 가질 이유가 없다”며 격정 토로했다.
김 대표가 남성 1순위인 비례대표 2번을 스스로 부여해 놓고도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빗대서 “그분은 대통령 떨어지고 국회의원이라도 해야겠는데 돈이 없어서 앞번호를 못받았다”고 주장, 당당한 모습을 보인 것도 문 전 대표와의 밀약설을 뒷받침한다.
마침 김 대표가 6선의 친노좌장인 이해찬 의원, 강경파 이목희·강기정 의원 등 운동권 세력을 줄줄이 탈락시킨 뒤 나온 것이어서 ‘친문세력’ 구축의 공로가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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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 대표는 스스로 2번으로 배정한 비례대표 명부가 전날 중앙위 반발로 확정되지 못한데 반발, 21일 비상대책위에 불참하는 등 '당무거부'에 들어갔다./사진=연합뉴스 |
하지만 김 대표와 문 전 대표와의 밀약이 있었던 아니든 지금 당 안팎에서는 김 대표의 셀프 공천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여야를 넘나들며 5번째 비례대표를 즐기고 있다” “팔순을 앞둔 노인이 과욕을 부린다” “비례대표 후순위에 올려 배수진을 쳤어야 한다” “더이상 킹 메이커는 안한다더니 킹까지 염두에 둔 것 아니냐” 등 노골적이다.
문제는 김 대표의 비례 공천이 말 바꾸기로 이뤄진 데 있다. 김 대표는 그동안 비례대표 얘기가 거론될 때마다 극구 부인해왔다. 이런데도 김 대표는 셀프 공천 뒤 “4.13 이후 내가 딱 던져버리고 나오면 이 당이 제대로 갈 것 같냐”며 당당하다.
김 대표는 또 “내가 무슨 욕심 많은 노인네처럼 만들었다”며 “저 사람들이 지금 핑계를 대는 거다. 이야기를 하려면 정직하게 해야지. 지금 정체성 때문에 그러는 거다. 자기들 정체성에 안 맞다 그거야”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김 대표는 “속마음을 다 가둬놓고 내가 큰 욕심이 있어서 한 것처럼 인격적으로 사람을 모독했다”며 분개했다. “그 따위 대접하는 정당에 가서 일을 해주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다”고 토로했다.
김 대표의 주장처럼 처음에는 비례대표 공천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가 나중에 생긴 것이라면 자신감의 발로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처음 김 대표 스스로도 반신반의하며 대표직을 맡아서 공천작업까지 진행해보니 좀 더 욕심을 내도 될 것 같았을 것이다.
얼마 전 그가 “이번 총선에서 107석을 못 얻으면 책임을 지고 당을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 그는 “대선 후보를 돕는 킹 메이커 역할은 그만하겠다”고 밝혔다. 야권통합이 안되는 상황에서 현재 의석수 정도만 확보해도 선전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런 한편, 107석 이상을 확보할 경우 당을 계속 이끌 가능성을 열어놓은 점에서 이때부터 자신감과 권력욕심을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김 대표가 더 이상 킹 메이커는 그만 두고 스스로 킹이 되려고 한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김 대표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그가 당대표를 맡아 임시 법정관리인을 넘어서서 전권을 다 갖고도 ‘배지’에 욕심을 낸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 전문성을 고려하고 직능대표와 소외계층의 대표자를 뽑는 비례대표 공천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점에서 명분이 없다는 시각이 많다.
김종인 대표와 문재인 전 대표 사이의 밀약이 있었더라도 이번 김 대표의 스스로 공천은 여러 측면에서 총선 과정 막바지에 당의 변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대표 스스로가 한계를 짓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 대표의 치밀한 준비가 없었거나 당내 반발이 이 정도일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 비대위는 이날 회의를 열어 김 대표의 비례대표 순번을 14번으로 조정하는 안을 냈고, 이 안이 중앙위를 통과하면 확정된다. 물론 14번도 당선 안정권이지만 이미 김 대표의 리더십은 치명상을 입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표 입장은 어떨까. 그는 김 대표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래서 김 대표가 대표직을 내놓고 탈당을 한다고 하더라도 손해볼 게 없다. 그동안 당은 안정권에 들어섰고, 문 전 대표의 지지율도 회복세를 보였으므로 크게 염려할 일이 없는 셈이다. 오히려 문 전 대표로서는 공천을 직접 하지 않아 손에 피도 안 묻힌 데다 총선 이후 당권을 다시 쥘 수 있는 길까지 열렸다.
그동안 대통령을 만들고 유력 정치인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숱하게 해온 대표 ‘책사’인 김 대표가 정작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중요한 타이밍에서 타협할 줄 모르는 사심(私心)을 드러내면서 뿌리채 흔들리고 있다.
[미디어펜=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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