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자기자본 규모가 4조원에 육박하는 대형 증권사가 탄생했다. 현대증권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KB금융지주가 선정되면서 증권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KB금융 자회사인 KB투자증권이 현대증권과 합병하면 순식간에 업계 3위 증권사가 된다. KB금융 측은 '한국형BoA메릴린치'가 되겠다는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지난 31이 금융권에 따르면, 현대그룹과 매각 주관사인 EY한영회계법인은 지난달 31일 KB금융, 한국투자금융, 홍콩 사모펀드(PEF) 액티스 등 총 3곳이 제출한 인수 제안서를 검토한 결과 KB금융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통보했다고 발표했다.
금투업계의 화제는 우선 KB금융이 써낸 '가격'에 모아졌다. 매각주관사인 EY한영에 따르면 마지막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친 KB금융과 한국금융 모두 1조원 초반의 가격을 써냈다. 이는 이번에 현대상선이 매각하는 현대증권 지분(22.56%) 시가의 약 3배에 달하는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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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은 1일 발표한 4월 조회사 첫머리를 "정성을 기울여 추진한 현대증권 인수에서 KB금융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린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연합뉴스 |
두 업체가 비슷한 가격을 써낸 탓에 거래종결 능력, 할인 조건 등 비가격 요소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이번 현대증권 인수는 현대그룹의 구조조정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업체가 써낸 가격마저도 비슷해 결국 가격 조건으로 우선협상대상자가 결정됐다.
KB금융은 한국금융에 비해 수백억 원대 근소한 차이로 많은 가격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 안팎의 인수가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그 가격이 아니었다면 인수 자체가 힘들었다는 결론이다.
현재 시점에서 인수가격 평가는 큰 의미가 없다는 시각도 있다. KTB투자증권 김은갑 애널리스트는 "대형 증권사 인수의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므로 KB금융 규모에 맞는 증권 자회사를 확보한 결과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수가격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야 인수 후 발전을 도모하는 편이 낫다는 분석이다.
KB금융의 이번 인수는 2전 3기로 평가받는다.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등 대형증권사 인수에 잇따라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증권까지 놓치면 당분간 대형 증권사를 인수할 기회가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1조원에 달하는 가격제시 등 파격적인 조건을 감수하도록 움직였다는 평가다.
KB금융그룹 윤종규 회장은 1일 발표한 4월 조회사 첫머리를 "정성을 기울여 추진한 현대증권 인수에서 KB금융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되었음을 기쁜 마음으로 알려드린다"는 내용으로 시작했다. KB금융이 현대증권 인수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이어서 윤 회장은 "리딩뱅크 위상 회복을 향한 발걸음에 더욱 기세를 높여 나가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맥락에서의 '리딩뱅크'는 윤 회장과 KB금융이 여러 차례 언급해온 '한국형 BoA메릴린치'를 밑그림으로 하고 있다. 이는 윤 회장이 작년 말 대우증권 인수를 추진했을 때부터 나왔던 얘기다.
BoA메릴린치는 지난 2008년 은행과 증권 업무를 결합한 유니버설뱅킹그룹으로 발전해 나가기 위해 상업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결합돼 탄생한 '메가뱅크'다.
KB금융이 특별히 BoA메릴린치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KB금융이 추구하는 미래 수익모델이 2008년 합병 단계의 BoA와 상당히 닮아있기 때문이다. 당시 BoA지주는 지난 2008년 메릴린치를 인수해 자산관리(WM) 부문의 수익비중을 전체의 10%에서 21%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기업투자금융(CIB) 수익 비중도 16%에서 38% 수준으로 올라갔다.
이는 국민은행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수익 다변화가 절실한 KB금융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 한때 그룹 내에서 순익 비중이 80%를 넘을 만큼 은행 의존도가 높았던 KB금융은 비은행 부문을 꾸준히 강화해 결국 작년에 은행 부문 당기순익 비중을 67%까지 낮췄다. M&A 또한 제일저축은행(현 KB저축은행), 우리파이낸셜(현 KB캐피탈), LIG손해보험(현 KB손해보험)등 비은행 업체들을 인수하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업계 안팎에서는 현대증권 인수가 KB금융의 수익다변화에 '화룡점정'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채권발행 시장에 강점이 있는 KB투자증권과 주식발행과 부동산 PF분야에 특화된 현대증권이 시너지를 낸다면 KB금융 내에서 증권사가 탄탄한 수익을 내는 알짜 계열사로 발돋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증권사는 업권에도 크게 겹치는 부분이 없어 합병은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KB금융 관계자는 "은행과 증권이 결합한 성공모델을 참조해 한국형 유니버셜 뱅킹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KB금융은 현대상선과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한 뒤 상세 실사와 최종 가격협상, 금융당국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을 거치게 되며 오는 5~6월 중 인수 절차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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