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이변극이나 반전은 없었다. 현 정준양 회장의 고교 2년 후배인 권오준 기술총괄사장이 포스코의 새로운 선장이 됐다. 내부출신이 옹립되면서 포스코 철강맨들의 자존심은 유지됐다.
그동안 거론돼온 인물이 줄줄이 낙마한 것도 특이하다.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기술전문인 권차기회장이 새 사령탑에 오른 것이어서 의외라는 평가도 나온다.
차기회장이 확정되는 과정에서 논란이 돼온 외부 낙하산인사가 배제된 것도 눈길을 끈다. 이번 추대과정이 외부 입김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강한 의욕을 보였던 오영호 코트라 사장은 간택되지 못해 발길을 돌려야 했다. 정회장과 회장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윤석만 전 사장도 일찌감치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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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권오준 차기 회장, 정준양 회장 |
권오준 차기회장은 현 정회장의 서울사대부고, 서울대 2년후배라는 점에서 정회장의 경영철학과 경영전략을 충실히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정준양 라인으로 통하기도 한다. 그의 형이 정회장과 절친한 친구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점에서 정회장-권차기회장의 바통터치는 포스코의 조직을 크게 뒤흔들지 않고, 사업재편과 재무구조 개선등을 해나가는 데 강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외부 낙하산인사가 내려오거나, 정회장의 라이벌 윤석만 전사장이 추대됐을 경우 임원진의 불안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조직 인사개편, 사업구조조정도 격랑이 불어닥쳤을 것이다.
권차기회장의 내정은 포스코의 조직을 흔들지 않고, 글로벌 공급과잉속에서의 포스코의 생존과 불황탈출, 글로벌 마케팅 강화를 차질없이 추진하기위한 포석이다. 정회장이 주력해온 철강과 에너지 금속소재 분야에 대한 전략적 투자도 차질없이 이어질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됐다.
권 차기회장은 포스코내에서도 최고의 금속 전문가로 통하고 있다.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 출신으로 캐나다 윈저대와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금속공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잇따라 획득했다. 전공에 대한 학구열이 대단한 셈이다.
지난 86년 포스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에 입사한 권 차기회장은 이곳에서 기술연구소장, 원장을 역임하는 등 기술통으로 경력을 채워왔다. 2012년에는 마침내 포스코 기술총괄 사장으로 최고경영자 반열에 부상했다.
권 차기회장은 포스코의 전략제품 개발을 주도한 점이 강점이다. 철강재의 고부가가치형 '월드베스트, 월드퍼스트' 제품은 그가 대부분 깊숙이 간여했다.
현 정준양회장도 소재분야 전반에 대한 투자를 집중적을 해왔다. 권차기회장도 정회장의 소재분야 육성을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권차기회장은 글로벌 감각도 갖고 있어 해외시장동향과 경쟁사 움직임 등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그의 글로벌 경영경험은 유럽사무소장 등을 경험하면서 축적됐다.
권차기회장의 앞날은 장미꽃만 있지 않다. 오히려 악재로 가득차 있다.
중국이 워낙 신증설을 통해 공급과잉을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 철강공급과잉량이 1억톤이나 되는 상황에서 주력수요처인 조선 해운 건설 등의 글로벌 시황이 워낙 좋지 않기 때문이다.
공급은 넘쳐나는데, 판매가격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정준양회장 후반기 들어 영업이익률은 과거 20%대에서 10%로 추락했다. 한해 6조~7조의 영업이익을 내다가 최근 수년간 3조원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더구나 내수시장에서의 포스코 고로독점체제도 현대제철이 1200만톤체제를 구축하면서 경쟁체제로 전환됐다. 국내시장에서도 후발 현대제철과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엄혹한 상황을 맞고 있다.
정회장 재임기간 공격적인 인수합병과 해외투자등으로 부채비율이 급등한 것도 풀어야 할 숙제다. 국제신용평가사에의한 포스코 신용등급도 BB대로 내려갔다. 물론 일본이나 유럽 미국등의 철강업체에 비해 그나마 신용등급이 좋다. 과거 부동의 A등급을 받았던 호시절을 감안하면 그만큼 포스코로선 위기를 맞고 있는 셈이다.
계열사수가 50개이상으로 급증하면서 방만경영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포스코가 재벌경영을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 권 차기회장은 정부나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서 사업재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디어펜=권일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