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감업종·선제·상시 구조조정…'특별고용지원업종 제도' 병행
[미디어펜=이원우 기자]골든타임이 절박한 한국경제에 단비를 뿌릴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 금융당국이 직접 칼을 빼들고 나섰다. 정부부처와 국책금융기관을 중심으로 원할한 구조조정을 이끌 협의체를 통해 신속하고 원만한 구조조정 해법을 찾겠다는 것.

여기에 더해 여야정 협의체까지 머리를 맞대 기업구조조정을 이끌겠다는 생각이다.

26일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 5층 대회의실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차관급 회의가 소집됐다.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고용노동부, 국토교통부, 해양수산부, 금융감독원,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업종별 소관부처 인원으로 구성된 '제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가 바로 그것이다.

이번 회의는 작년 말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5대 경기민감업종(철강‧석유화학‧건설‧조선‧해운)의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 방안에 대한 후속조치 점검 차원에서 이뤄졌지만 과거보다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금융당국의 구조조정 마스터플랜이 공개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 딱딱하게 굳어버린 한국경제의 유일한 대안인 '기업 구조조정' 문제에 금융당국이 직접 칼을 빼들고 나섰다. /금융위원회


약 90분간의 회의 종료 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브리핑룸에서 직접 기자들과 만나 업종별로 세부화된 기업 구조조정의 골격을 설명했다.

우선 철강‧석유화학‧건설 분야의 구조조정 현황에 대해 임 위원장은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철강 업종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개선되는 추세인 데다 공급과잉으로 경영이 악화되고 있는 합금철 업계의 경우 자발적으로 생산량을 감축 중이라는 것이다. 

조선업‧해운업 문제 특히 심각…"조선 수주량 전무"

임 위원장은 역시 공급과잉이 문제가 되고 있는 석유화학 테레프탈산(TPA)의 경우에도 업계 자발적인 설비감축이 순조롭게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건설 분야 역시 "작년 건설수주 급증으로 당분간 불안요인은 없는 상황"이라고 봤다.

문제는 조선 업계와 해운 업계다. 조선 업계의 경우 "어려운 상태"라고 말문을 연 임종룡 위원장은 "대우조선, STX 등 정상화를 추진 중인 조선사들이 경영정상화방안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으나 세계 선박발주량 감소로 수주량이 크게 감소하고 경영상황 또한 계속 악화되고 있다"며 우려했다. 특히 올해 수주량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해운 업계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다. 임 위원장은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경우 그동안 경영정상화를 위해 상당한 자구노력을 경주했으나 운임하락 지속으로 경영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세계 해운업계 얼라이언스 재편 움직임으로 불확실성이 더욱 증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협의체는 조선과 해운 업계에 구조조정 노력을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발표된 구조조정은 3개의 트랙(track)으로 동시 추진된다. 즉 '경기민감업종 구조조정' '상시 구조조정'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3개의 테마가 한꺼번에 돌아가는 방식이다.

경기민감업종 구조조정이란 정부협의체가 구조조정 방향을 수립하면 이를 기초로 채권단이 개별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해 나가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에 덧붙여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의거한 신용위험 평가 후 재무구조개선약정 체결, 워크아웃, 회생절차 등이 추진된다. 

계획에 따르면 대기업 정기 신용위험평가는 올해 4~7월, 중소기업 평가가 7~10월에 실시돼 부실징후기업을 선정하게 된다. 은행들이 신용위험평가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금감원이 집중관리를 담당하며, 필요시 대기업에 대해서는 하반기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마지막 트랙인 '선제적 구조조정'에 대해서는 철강‧석유화학 업계가 스스로 정한 공급과잉 해소 방안을 존중하되 필요시 기업활력제고법 등을 이용해 선제적 구조조정에도 돌입한다는 방안이다. 

여‧야‧정 합의체, 약인가 독인가

작년 말 처음으로 꾸려진 이번 회의체에 대해서는 지난 4‧13 총선 결과가 '여소야대'로 결론 나면서 불가피하게 정치적 패러다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특히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여‧야‧정 협의체가 어떤 방식으로 구조조정 문제에 개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집중됐다.

임 위원장은 일단 여‧야‧정 협의체에 대해서 "여야 정치권에서 기업구조조정과 경기 회생문제에 지원의사를 밝힌 움직임에 대해서 환영한다"는 의사를 드러냈다. 구조조정 이슈는 산업전반의 문제에 걸쳐 있으므로 채권단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힘들다는 게 임 위원장의 뜻이었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개혁 등이 병행돼야 효과가 배가된다"고 지적한 임 위원장은 "법과 예산을 다루는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면서 "정부 또한 적극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협상해야 한다"면서 여‧야‧정 협의체의 역할을 강조했다. 

다만 협의 과정이 지나치게 길어져 구조조정의 적기(適期)를 놓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감을 드러냈다. "개별기업 문제에 대해서는 채권단이 반드시 (논의의) 중심이 돼야 한다"고 짚은 임 위원장은 "협의체가 해야 할 일은 입법과 재정 부분의 문제이므로 개별기업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강요도 없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힘줘 말했다.

정치권의 지나친 개입이 힘들게 시동 걸린 구조조정 움직임을 무위로 돌릴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됐다. 윤상직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권이 구조조정 문제에 개입하면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자동차 때와 같은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다만 정국에서 주도권을 잡게 된 야당이 구조조정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점에 대해서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시선도 있다. 노동계 한 학자는 "당국의 구조조정 의지가 아무리 강력해도 번번이 강성 노동조합 때문에 일처리가 늦곤 했다"면서 "모처럼 거론된 여‧야‧정 협의체가 적어도 구조조정의 시급성에 대해서만 공감을 해줘도 과거와는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야·정이 역할과 권한을 무시한채 기업 구조조정을 강하게 이끌어갈 경우 구조조정이 산으로 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각자의 권한에 따라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정치권은 입법에 주력하면 되는데 깊숙히 간섭할 경우 눈치를 봐야 하는 금융당국과 국책은행이 정치 논리에 따라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야기될 수 있는 노동계의 반발을 충분히 의식한 듯 이날 협의체 회의 결과 발표에서는 '특별고용지원업종 제도'가 소개돼 눈길을 끌기도 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고용사정이 급격히 악화될 우려가 있는 업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사업주와 근로자에 종합적인 지원을 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는 경남 통영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지난 2013년 고용촉진특별구역으로 지정돼 2년간 총 8429명에 대해 171억 원을 지원한 통영의 사례를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다시 구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특별히 이번에는 특별 '업종'에 대한 지원도 병행된다. 업종 전체가 구조조정의 파고에 직면했을 경우에 대비해 업계 전반에 고용유지지원금, 실업급여, 재취업지원 등을 종합 패키지로 구성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서는 조선‧해운업 관련 업종에 대해 이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지만 금융위는 구체적인 기준이나 일정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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